
우리는 흔히 죄를 단순히 ‘윤리적 실수’나 ‘나쁜 행동’의 나열로 치부하곤 합니다. 하지만 **장재형 목사(Olivet University)**는 창세기 3장을 통해 죄의 본질이 인간 영혼의 근간을 뒤흔드는 **’관계적 붕괴’**임을 역설합니다. 에덴의 사건은 박제된 신화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갈등, 끊이지 않는 욕망,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영적 전쟁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정교한 진단서와 같습니다.
1. 유혹의 매커니즘: 신뢰를 잠식하는 미세한 독
장재형 목사는 뱀의 유혹이 노골적인 부정보다는 **’의심의 씨앗’**을 심는 것에서 시작됨을 주목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이…?”라는 질문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왜곡하고, 보호를 위한 울타리였던 금령을 자유를 억압하는 굴레로 오해하게 만듭니다.
- 자의식의 변질: 인간이 스스로 선악의 주권자가 되려는 교만은 하나님과의 분리를 초래합니다.
- 욕망의 삼중 구조: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유혹은 감각과 인지, 그리고 의지를 차례로 마비시키는 현대의 미디어와 문화적 흐름 속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2. 영적 외과수술: 단호한 끊어냄과 거룩한 습관
죄는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그 **’유입 경로’**를 차단해야 할 대상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마태복음 5장의 ‘눈을 빼어 내버리라’는 말씀을 자학적 행위가 아닌, 영혼을 살리기 위한 영적 외과수술로 해석합니다.
- 통로의 폐쇄: 스마트폰의 무분별한 사용이나 무책임한 관계 등 죄가 스며드는 일상의 채널을 정직하게 점검하고 닫아야 합니다.
- 여백의 창출: 끊어냄은 상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과 기도, ‘디지털 안식’을 통해 영혼이 숨 쉴 수 있는 질서를 재건하는 과정입니다.
3. 도피에서 직면으로: “네가 어디 있느냐”
타락한 인간의 전형적인 반응은 수치와 회피, 그리고 책임 전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서로를 탓하며 숨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복시키기 위해 질문을 던지십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위치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적 상태를 자각하게 하려는 은혜의 초청입니다.” — 장재형 목사
우리는 환경이나 타인을 핑계 삼는 ‘타락한 본능’을 버리고, 오직 진실만이 통하는 하나님의 법정 앞에 정직하게 서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성령의 책망은 우리를 정죄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는 사랑의 손길이기 때문입니다.
4. 가죽옷과 원시복음: 심판 속에 깃든 자비
하나님은 부끄러움을 가리려 무화과 잎을 엮은 인간에게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입히셨습니다. 이는 희생 없이는 죄의 수치를 가릴 수 없다는 구속사의 원리이며, 장차 십자가에서 완성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 창세기 3장 15절(원시복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은 인류 역사에 울려 퍼진 첫 번째 구원의 종소리입니다.
- 발꿈치와 머리의 대조: 사탄은 성도의 발꿈치를 상하게(고난과 유혹) 할 뿐이지만, 그리스도는 이미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써 최종적 승리를 확정 지으셨습니다.
5. 영적 전쟁의 공동체적 승리
장재형 목사는 영적 전쟁이 개인의 수양을 넘어 공동체적 책임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탄의 주특기가 ‘고립과 거짓’이라면, 복음의 능력은 ‘연합과 진실’에서 나옵니다.
- 서로를 지키는 연대: 부모와 자녀, 리더와 구성원이 서로의 영혼을 돌보며 실족하지 않도록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 성령의 전신갑주: 기도는 무기를 작동시키는 호흡이며, 말씀은 광야의 예수님처럼 유혹을 분별하여 거절하게 하는 실제적인 힘입니다.
결론: 회복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창세기 3장은 에덴으로부터의 추방으로 시작되나, 성경의 결말인 요한계시록은 생명나무로의 귀환으로 마무리됩니다. **장재형 목사(Olivet University)**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우리가 죄 아래 놓인 절망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회복될 수 있는 존귀한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발꿈치를 노리는 유혹의 화살이 우리를 흔들지라도,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궤적을 따라 빛으로 걸어 나갑시다. 타락의 역사가 끝난 자리에서, 십자가로 열린 회복의 길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