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목사(장다윗)는 요한복음 14장 15절에서 26절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별설교 중 등장하는 보혜사 성령에 대한 약속을 깊이 다루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를 강조해 왔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고별설교를 하시며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고, 이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떠나가신 뒤, 제자들을 결코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지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해 설파하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세 위격이 동시에 한 본질이심을 믿는 기독교의 핵심교리야말로 참된 진리임을 누차 강조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 근거가 무엇인가? 첫째로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둘째로 우리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며, 셋째로 주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삼위일체 안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역할과 역사하심은 연합되어 있다. 특히 요한복음 14장에서는 보혜사(헬라어 파라클레토스)라 불리우는 성령이 “진리의 영”으로 소개된다. 장재형목사는 이 진리의 영이 세상에 속한 자들에게는 숨겨져 있으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키며 믿는 자들에게는 열려 있는 특별한 은혜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성령을 받지도, 알지도 못하지만,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해 성령을 체험하게 된다.
본문에서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성령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며,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도 전 세계의 모든 믿는 자들과 함께하신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위대한 성령의 시대가 열렸다”고 역설한다. 성령은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의 공로 위에서 역사를 이루심으로, 믿는 자들의 심령에 들어오셔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보호하시며, 진리에 눈뜨게 하고, 힘과 능력을 부어주신다. 인간은 죄의 사슬에 매인 존재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그를 통해 임하시는 보혜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유케 되고 새 생명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이 성령께서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당시 제자들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제자들은 십자가 수난과 죽음, 부활을 직접 체험했지만, 예수님이 물리적으로 떠나가시는 상황 앞에서 두려워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버려두지’ 않으시며, 오히려 “내가 다시 오리라”고 하심으로, 부활 이후 성령 강림의 새로운 역사를 확증하셨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에서 예수님의 절대적인 믿음을 강조한다. 주님은 십자가와 죽음이라는 극한의 고통을 앞두고도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고 선언하셨으니, 이것은 주님 스스로 부활의 세계를 확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죽음은 일시적이며, 사망 권세가 주님을 붙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주님이 선언하셨다는 점에서, 이미 승리의 자리에 계심을 볼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삼위일체 교리의 중요성을 거듭 설파한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결코 군주신론(Monarchianism)이나 양태론(Modalism)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오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서로 독립적인 위격을 지닌 동등한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성부 하나님의 피조물’처럼 종속되어 있다면,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낸 구속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이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나님(하나님과 동일 본질)으로서 우리에게 오셔서 대속의 구원을 이루셨고, 성령 역시 참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구원 여정에 동행하신다.
이 삼위일체 신앙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왜 한 분 하나님만 믿으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삼위일체를 믿는 이유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시는 성자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빚으시는 성령께서 함께 일하시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유한한 존재이기에, 무한하신 하나님을 스스로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계시하셨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셨다. 또한 그 예수님의 길을 오늘날 우리 각자에게 적용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분이 곧 성령이시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신 동시에 세 위격으로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거룩해지는 전 과정을 완성해 가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칭의(의롭다고 여김)를 얻는다. 그리고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계속해서 거룩해져 간다. 삼위일체의 축도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 순서로 되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고, 또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늘 그 사랑 안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십자가 위에서 완성된 구원이 성령에 의해 각 사람 안에 적용되고, 그 적용된 구원이 구체적인 열매를 맺도록 우리를 이끄는 과정이 곧 성령의 사역”이라고 소개한다.
구약의 시대는 성부 하나님의 통치와 언약, 율법을 통해 우리의 죄와 한계를 드러내는 시대였다면,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자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해 구속의 길을 여신 뒤, 이제는 성령의 시대가 열렸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는 놀라운 선언이 실제가 되는 장면이다. 구약시대처럼 특정한 선지자에게만 성령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남종이나 여종, 늙은이든 젊은이든,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에게 성령이 임하신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 보편적인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며, 또한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여 “진리의 영”과 동행하게 되는 진정한 기쁨이라 말한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주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하셨다. 여기서 “내 이름으로 보내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의 사역을 통해 성령이 보내진다는 의미이다. 아무 대가 없이 성령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이 선행됨으로써 열린 구원과 은혜의 문 안에서 성령이 임하신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을 “십자가가 없이는 성령도 없다”라고 요약한다. 죄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위에 성령의 시대가 서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다.
성령은 우리의 삶 속에서 진리를 조명해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이것은 그저 지식적인 암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능력으로 변화시키는 기억과 인도하심이다. 우리가 죄에 빠져 있거나 혹은 인간적인 욕망에 잠식될 때,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주님의 길로 돌아가라, 그것이 죄다”라고 깨닫게 해주신다. 그리고 그 회개의 과정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위로하시며, 예수님의 의를 더욱 깊이 알게 하셔서 감사의 찬송을 드리게 만든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참된 자유를 맛보는 길”이라 부른다. 세상은 자유를 방종이나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죄 사함을 얻고 성령 안에서 살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을 성령강림절에 꼭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예수님이 “내가 떠나가도 너희가 근심할 필요가 없다. 보혜사 성령이 오실 것이고, 그분이 너희를 영원토록 함께하실 것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없다.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이 있었으나, 먼 훗날 태어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물리적 현존을 경험하기 어렵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시므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누구든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또 다른 보혜사”이며,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펼치신 ‘새 시대’의 시작이다.
보혜사(Paraclete)로 번역되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원어상의 의미로 ‘곁에서 돕는 자’, ‘조력자’, ‘위로자’, ‘변호자’, ‘상담자’, ‘격려자’ 등 다채로운 뜻을 가진다. 영어로는 Comforter, Advocate, Counselor 등으로 번역된다. 장재형목사는 라틴어에서 Comfort가 ‘함께 힘을 준다’(com + fortis, fortis는 용기·힘)라는 의미라고 설명하면서, 성령께서 우리를 위로하실 뿐 아니라 영적 능력과 담대함을 부어주시는 분이라고 역설한다. 믿는 자가 세상에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담대함은 성령의 능력이다. 제자들이 예수님 부활 이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을 때 성령이 임하셨고, 비로소 그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는 거센 핍박 속에서도 복음이 확장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이었다.
성령은 예수님이 하신 모든 진리의 말씀을 우리에게 되새기게 하고 가르치시며,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믿음으로 뒤따르게 하신다. 장재형목사는 “이 성령의 내주하심이야말로, 우리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만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몸된 성전이 되어 성령이 거하실 때, 우리의 신앙은 단순히 지식이나 제도적 틀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직 삶의 모든 순간에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죄를 멀리하고 진리 가운데 거하려 애쓰게 된다. 이는 내적 동기가 달라지는 것이며, 더 이상 율법의 외적 강제나 종교적 의무감이 아닌, 성령 안에서 자발적으로 변화되는 모습이다.
이처럼 요한복음 14장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깊은 신비가 농축되어 있다. 아버지께서 계획하시고, 아들이신 예수님이 성취하신 구원의 일을 성령이 믿는 자 각 사람에게 실제로 적용하시고 열매 맺게 하신다. 이 교리를 모르면 교회가 단순히 사람이 만든 종교 조직처럼 보이겠지만, 삼위일체의 경륜을 깨달으면 교회가 곧 ‘성령이 거하시는 공동체’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 개개인도 ‘성령의 전(殿)’이 되어 하늘의 영광을 이 땅에서 맛보며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 찬다.
장재형목사는 “성령은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자, 동시에 우리의 영혼을 돌보시고 변화시키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보혜사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고 종말까지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다. 혹 넘어지거나 죄를 범하는 순간에도,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회개와 거룩을 회복하는 길로 돌아서게 된다. 무엇보다 이 시대의 수많은 갈등과 상처가 성령의 치료와 위로로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복음적 시각이다. 성령은 마음이 완악해져서 서로 미워했던 사람들에게 화해와 사랑의 길을 열어주며, 죄로 인해 무겁게 짓눌린 이들에게 자유와 기쁨을 선물하신다.
예수님이 떠나가신 자리에, 영원히 우리 안에 거하시는 보혜사 성령이 오신다는 사실은 결코 작은 위로가 아니다. 지구상 어느 곳에 있든, 어떤 세대에 속해 있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그 말씀을 사모하는 이라면 누구나 동등하게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 공동체의 특징이며, 장재형목사가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교회의 보편성’이기도 하다. 교회가 가진 이 보편적 특성은, 결국 성령께서 만민에게 부어지심으로 실현된다. 교회 안에서 지위나 나이, 성별, 사회적 신분은 차별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성령이 각각의 사람에게 다르게 은사를 주시되, 그 모두가 한 몸을 이루어 그리스도를 증언하도록 인도하신다. 이로써 우리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지체들이 협력하고 섬기는 공동체가 된다.
성령은 또한 “진리의 영”이시기에, 거짓과 어둠, 미움과 폭력이 자리를 잡기 어렵다. 세상에서는 이익이나 권력, 욕망의 충돌로 인해 무수한 갈등이 벌어지지만, 성령의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 섬기고 용서하며 자라나게 된다.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추구해야 할 비전이다. 교회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성령을 의지하여 조금씩 진리와 사랑을 실천해 나갈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참빛을 보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 과정을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길”로 설명한다. 교회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을 지니되, 동시에 세상 속에서 섬김을 실천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렇듯 장재형목사는 요한복음 14장에 기록된 삼위일체적 구원의 약속, 그리고 보혜사 성령의 약속을 통해 새로운 성령의 시대가 열렸음을 누차 강조해 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한 분 하나님으로서, 그러나 세 위격으로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정수다. 어떤 세력이 기독교의 교리를 흔들려 해도, 성경의 기초 위에서 세워진 삼위일체 신앙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이 삼위일체 신앙을 체득하고 경험하는 자들은,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며, 그 사실을 깨닫고 주를 영접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임하셔서 죄의 습관을 벗어나도록 도우신다. 회개하고 거듭난 심령은 성령 안에서 새 옷을 입게 되며, 점차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간다. 그 결과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세상에 나가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낸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이를 가능케 하시는 분이 바로 보혜사 성령이시다. 요한복음 14장 이후로 교회는 핍박도 받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성령께서 결코 믿는 자들을 홀로 두지 않으심으로 중세·근대·현대를 거쳐 지금까지 교회가 존속할 수 있었다. 오늘날도 성령의 역사는 유효하며, 장재형목사는 이를 확신하는 믿음으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역설한다.
Ⅱ. 성령 시대의 삶과 구원의 완성
장재형목사는 삼위일체 신앙의 토대 위에서, 성령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왔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현재적’으로 경험하며, 죄 사함의 자유와 함께 거룩한 행실로 나아가는 능력을 공급받는 것이다. 구원이란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며 완성에 이르는 과정이다. 신자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의인’으로 칭함받지만, 동시에 옛 습관과 죄성을 씻어가는 성화의 과정에 돌입한다. 이 성화는 사람이 자기 의지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필수적이다.
장재형목사는 로마서 8장을 대표적인 ‘성령장’이라고 부른다. 로마서 1장에서 7장까지 사도 바울은 인간이 얼마나 죄 가운데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떻게 죄를 대속했는지,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 어떻게 의롭다 칭함을 받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8장에 이르러 성령론을 전개하며, 성령 안에서 신자가 누리는 자유를 선포한다.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하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성령 안에서 우리는 정죄받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담대하게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성령이 역사하실 때 우리의 구원은 단순한 지적 선언을 넘어 실제 삶 속에서 능력을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는 이를 잘 보여준다.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 삶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면 아직 진정한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밭을 기경하고, 거짓과 탐욕과 음욕, 미움 등을 몰아내며,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이끈다. 그러므로 장재형목사는 성령강림절이나 교회의 각 예배 때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라”고 권면한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와 교육이 있어도, 본인이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지 않으면 그 영적 변화가 현실로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는 사도행전을 ‘성령의 행전’이라고 부른다. 제목은 ‘사도행전(Acts of the Apostles)’이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사도 개개인의 역량보다도 성령께서 그들을 어디로 이끄셨는지, 각 도시와 민족에서 어떻게 복음을 확장시키셨는지가 핵심 흐름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베드로가 담대히 설교했을 때 하루에 3천 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나아가 예루살렘에 머무르지 않고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복음이 퍼지면서, 온 세상이 복음의 능력 앞에 변화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놀라운 역사는 제자들이 본래부터 가진 능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체포되자 겁이 나서 뿔뿔이 흩어졌던 연약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자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다.
이처럼 성령의 권능이란 사람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세우며, 세상을 뒤흔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한다. 교회는 이 성령의 역사에 동참하는 공동체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은 곧 성령과 동행하는 여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핍박과 시련이 찾아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요한복음 14장 이후 15장, 16장에서도 예수님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라 경고하셨다. 그 미움의 본질은, 세상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요 3:19). 빛이 비추어 드러나는 죄를 기꺼이 회개하고 고백하기보다, 회개를 거부하고 자기 의를 주장하고자 하는 마음이 세상 속에 강력히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성령 안에서 계속해서 죄를 씻고, 말씀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간다.
성령시대는 ‘고아처럼 버려진’ 시대가 아니라, 보혜사 성령이 우리를 위로하고 변호하며 가르치는 시대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여러 각도에서 풀어내는데, 첫째 성령은 우리의 ‘위로자’(Comforter)로서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신다고 설명한다. 둘째 성령은 ‘변호자’(Advocate)로서 우리의 연약함과 죄를 사단이 고소하려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붙들고 우리를 정죄당하지 않게 지켜주신다. 셋째로 성령은 ‘조력자’(Helper)로서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실제적인 능력과 지혜를 부어주신다. 넷째, 성령은 ‘상담자’(Counselor)로서 우리가 무지하고 혼란스러울 때 길을 제시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신다. 이러한 사역이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것이 핵심이다.
장재형목사는 더욱이, 성령 강림 이후에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누구나 성령을 받는다고 설파한다. 구약에서는 선지자나 임금처럼 선택된 소수에게 성령이 임했지만, 이제는 모든 육체에게 성령이 임하리라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요엘 2:28-29)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이를 인용하며, 오순절에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임한 성령의 역사를 해석했다. 이는 사회적 신분이나 문화적 배경의 벽을 허무는 사건이었고, 교회가 가야 할 방향성을 보여준다. 교회는 인종과 언어, 지위와 성별을 초월해 하나로 결속된 새로운 공동체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는 여러 계층과 배경을 가진 이들이 공존하지만, 그들이 한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서로 섬기는 이유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시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부어주신다. 어떤 사람은 지혜의 말씀이나 지식의 말씀을 받아 말씀을 풀고 가르치며, 어떤 사람은 믿음이나 병 고침, 예언, 영 분별, 방언, 통변의 은사를 받는다(고전 12장).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은사가 한 성령으로부터” 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교회를 세우고, 이웃을 섬기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장재형목사는 어느 한 가지 은사가 다른 은사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며, 교회 안에서는 다양한 은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교회는 방언을 받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했다며 극단적인 주장을 펴기도 하는데, 이는 성경이 말하는 균형을 벗어나는 태도다. 방언이든 예언이든, 모든 은사는 성령이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은사를 사모하되 은사로 인해 교만하거나 타인을 무시하지 않고,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것이다.
성령은 교회를 위해 은사를 베푸실 뿐 아니라, 개인의 거룩도 세워주신다. 사람은 죄를 지을 때마다 거룩한 옷이 더러워지는 것과 같고, 그래서 회개와 씻김이 필요하다. 묵은 죄성을 완전히 몰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바울도 로마서 7장에서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도다”라며 탄식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로마서 8장에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하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다”고 선포한다. 이는 성령 안에서 승리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아무리 깊은 중독이나 어두운 습관 속에서도 성령께 나아가면,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성령을 “내적 자유와 해방의 영”이라 부른다. 인간이 자기 의지만으로는 끊을 수 없는 죄의 사슬을 끊고, 새 피조물로 살아가게 만드는 능력이 성령 안에 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하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역은 “계속해서 우리를 기도하게 하신다”는 점이다. 바울은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이 우리 연약함을 도우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신다”(롬 8:26-27)고 했다. 많은 신자들이 길게 기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생각이 복잡해지고, 집중력이 흐려져 몇 분 만에 기도를 포기하기 쉽다. 그런데 방언을 받으면 내 지성이 간섭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성령이 기도하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에, 오랜 시간 기도할 수 있다. 방언은 나를 유익하게 하는 은사이며, 예언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준다(고전 14장). 방언을 못 받았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성령이 허락하신다면 방언이든 예언이든 무엇이든 간절히 사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장재형목사는 조언한다.
이처럼 성령은 교회 안에서 풍성한 열매와 은사를 일으키시는 분이시다. 교회 역사를 돌아봐도, 위대한 부흥의 시기마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초대교회의 급성장, 중세 말 종교개혁, 근대 대각성운동, 현대의 세계선교 확장은 모두 성령께서 움직이신 결과다. 그러므로 교회가 쇠퇴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지 못할 때는, 성령의 불이 식어버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끊임없이 성령 안에서 거듭나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령 없는 교회는 기계적인 종교 활동만 반복하면서 세상과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교회는 제도나 형식보다도 하나님의 생명력이 넘쳐흐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참된 변화로 이끈다.
삼위일체 신앙은 성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그 보내심을 받아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으며, 이제 성령께서 그 구원을 각 사람에게 적용하시고 교회 공동체를 통해 확장하신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구원의 완성은 예수님 재림 시에 이루어지겠지만, 그 재림의 날까지 성령께서 매 순간 우리를 인도하시고 거룩하게 빚어가신다. 장재형목사는 “성령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를 세우는 것이며, 동시에 예수님 재림을 준비하는 신부로서 교회를 단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경건과 공동체의 성장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가야 한다. 성령이 개인의 성화를 도우실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 속에서 교제를 통해 서로를 세우고 서로 죄를 고백하며 중보할 때 거룩이 더욱 공고해진다.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 백성이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할 것을 예언한다(계 21장). 그날까지 성령은 모든 시대의 성도들을 돌보신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을 “마지막 심판의 날까지 성령께서 우리를 변호하신다”고 표현한다.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고, 성령은 그 사실을 계속해서 우리 양심에 증거하며 확신케 하신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심지어 교회 안에 분열과 갈등이 있다 해도, 성령이 떠나지 않으시는 한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라지지 않는다. 성령께서 애통해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시며, 변화의 돌파구를 마련하시는 것이다.
성령 시대의 삶이란, 날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부의 사랑, 성자의 은혜, 성령의 교통하심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 사함과 의롭다 함을 받았고, 이제 성령 안에서 거룩에 이르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작은 걸음씩 전진할 때, 내 안의 옛 자아는 줄어들고 예수님의 형상이 드러난다. 장재형목사는 이 과정을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교회 안에, 그리고 세상 안에 확장되는 과정”이라 요약한다. 우리가 세상과 구별된 존재가 될수록, 세상도 점차 복음 앞에 문을 여는 수순을 밟는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에 나타난 보혜사 성령의 약속과 삼위일체 구원론은 기독교 신앙의 정수이며, 이를 통해 교회는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 믿음의 유산을 지켜가면서 성령의 현존을 더욱 강하게 경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개인으로 보면, 성령의 내주하심을 날마다 사모하고, 말씀과 기도로 성령과 교통함으로 죄를 물리치고 예수님을 더 알아가야 한다. 교회 공동체 차원에서는, 성령이 각 지체에게 나누어주신 은사를 합력하여 하나의 몸으로 움직이고, 서로의 연약함을 보완하며, 세상을 향해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모든 사역의 핵심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우리 안에 각인시키고 열매 맺게 하시는 성령”이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섭리가 펼쳐져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우리는 결코 홀로 버려지거나 길을 잃지 않는다. 보혜사 성령은 지금도 우리를 이끄시고, 힘주고, 회개케 하며, 기도케 하신다. 이를 믿고 붙드는 이들에게는 어떠한 환난이나 박해도 두렵지 않다. 죽음 너머 부활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 승리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성령 안에서 매일 새로워지며 사랑과 기쁨과 평안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다.
장재형목사는 요한복음 14장에서 발원하는 성령의 약속이 요엘서 2장, 사도행전 2장, 로마서 8장, 갈라디아서 5장, 고린도전서 12~14장 등 신약 곳곳에서 구체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것이 신약 교회의 본질적인 힘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 동일한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붙들기만 하면 된다고 강조한다. 이 말씀은 교회라는 공동체가 단순한 종교기관이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 그리고 성령의 인도 안에 살아가는 생명 공동체임을 드러낸다.
우리는 성령 시대를 맞아 보혜사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며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더욱 깊이 예배하고 교제하는 부르심을 받았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우리는 고아처럼 남겨지지 않았다. 보혜사 성령이 모든 진리를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예수님의 구원을 통해 누리게 하신다. 은혜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구약시대의 몇몇 선지자들처럼 드물게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주의 이름을 부르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서로 다른 은사를 나누고, 예수님을 증언하며, 세상에 나가 그분의 사랑과 진리를 전하는 특권을 누린다. 바로 이것이 장재형목사가 줄곧 역설해 온 “성령의 시대가 열렸다”는 복음의 핵심이다.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곧 한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분 안에서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다.
장재형(장다윗)목사를 오늘의 언어로 이해하려면 먼저 고린도후서의 박동을 듣게 된다. 바울은 교회의 상처와 혼란, 거짓 교사들의 비방, 자신의 사도권을 둘러싼 오해 속에서도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운 목회자였다. 그는 아시아에서 당한 극심한 환난을 떠올리며 살 소망마저 끊어진 시간 속에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고백했다. 이 고백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신앙의 훈련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장재형목사의 길이 바울의 길과 공명한다. 그의 사역은 성과의 장부가 아니라, 위로의 하나님을 배우며 한 걸음씩 순종해 온 목회자의 여정이다.
장재형목사는 초창기부터 바울의 로마서가 보여 준 방식처럼 복음을 체계적으로 변증하고 교리를 견고히 세우는 일에 집중해 왔다. 신앙이 감정이나 경험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각이 그의 가르침을 관통한다. 인간의 전적 부패,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구원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복음주의의 핵심은 장재형목사가 세운 공동체와 교육 현장의 기초가 되었다. 올리벳대학교(Olivet University)에서 구현된 교육 철학은 신학과 실천, 학문과 선교, 변증과 영성의 균형을 지향한다. 이는 학위 취득을 넘어, 젊은 세대가 복음의 깊이를 이해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 신학을 해석·변증·실천하도록 돕는 총체적 훈련이다. 바울이 개척한 교회들을 재방문하며 교리를 바로 세우고 신앙을 점검했던 것처럼, 장재형목사의 교육과 목회는 공동체가 스스로 믿는 바를 설명하고 지켜낼 수 있도록 돕는 장기적 성육(聖育)의 전략이다.
고린도후서가 보여 준 바울의 리더십은 눈물과 편지, 권면과 자기 비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약함을 숨기지 않고, 약함 속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자랑했다. 권위는 지배가 아니라 섬김에서 나왔고, 교회를 움직인 힘은 이미지가 아니라 진리와 사랑, 그리고 십자가의 길이었다. 장재형목사의 리더십도 이와 닮아 있다. 그는 수직적 통제보다 수평적 동역을 중시하며,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형제·자매라 부르는 언어가 단순한 호칭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높낮이를 허무는 신학적 고백임을 강조한다. 동역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성장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자신의 아픔처럼 여기려는 태도는 그의 사역 전반에 배어 있다. 바울이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이방 교회들의 연보를 독려하며 하나 됨을 세웠듯, 장재형목사는 복음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다양한 배경의 사역이 연대할 때 선교가 더 깊고 넓게 뿌리내린다고 믿는다.
선교를 바라보는 눈에서도 두 사역자의 공명은 선명하다. 바울이 로마 제국의 언어와 도로망을 활용했다면, 장재형목사는 미디어·IT·예술·교육이라는 현대의 공용어를 선교의 통로로 삼았다. 그는 기독교 매체와 다양한 문화·교육 플랫폼을 통해 세상을 복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청년들이 자신의 재능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하도록 독려했다. 이는 단지 기독교 소식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문화의 장(場)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정직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는 변증의 시도였다. 선교는 교회당의 특별 활동이 아니라 일상과 직업, 학문과 예술, 기술과 공공선의 영역 속으로 스며드는 삶의 양식임을 보여 준 실험이기도 했다. 바울이 도시마다 동역자를 세우며 교회 개척의 씨앗을 심은 것처럼, 장재형목사는 대륙과 세대를 넘어 리더를 세우고 공동체를 일으키며 복음주의 신앙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장기적 관점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복음 전파의 길은 언제나 환난과 오해를 동반한다. 바울이 거짓 교사들의 비방과 성도들의 흔들림 속에서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해야 했던 것처럼, 바울이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으로 ‘눈물의 편지’를 보냈다고 고백했듯, 목회자의 언어는 늘 상처 입은 심령을 향한다. 그 말은 상처를 벌리는 칼이 아니라, 잘못 아문 통념을 절개해 새살이 돋게 하는 치유의 도구여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 치유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의 약함과 실패마저 하나님께서 위로의 통로로 사용하실 수 있음을 확인해 왔다.
고린도후서의 반복되는 주제는 위로의 하나님이다. 우리가 겪는 고난이 개인적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동일한 환난 중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통찰은 목회를 지탱하는 강력한 동력이다. 장재형목사의 설교와 글, 그리고 현장의 지도력은 바로 이 위로의 신학에서 힘을 얻는다. 그는 사람들이 겪는 외로움과 오해, 실패와 낙심을 외면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들이 은혜의 학교가 되어 우리를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훈련하며, 받은 위로를 흘려보내는 통로로 세운다는 복음의 약속을 붙든다. 신학자 폴 틸리히가 말한 ‘존재의 용기’는 이 맥락에서 단순한 심리적 결기가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현실성에 뿌리내린 영적 담대함이다. 십자가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드러내는 동시에, 약함 속에 머무는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사람을 새롭게 하는지 보여 준다. 장재형목사는 이 능력이 교회의 가장 낮은 자리, 보이지 않는 섬김과 인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충성에서 가장 선명히 빛난다고 강조한다.
교리를 세우는 일은 곧 삶을 세우는 일이다. 로마서와 고린도후서, 에베소서에 스며 있는 복음의 논리는 추상적 명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와 선교의 전략을 형성하는 실천적 원칙이다. 장재형목사는 아담과 그리스도의 연방 대표성, 은혜의 질서, 에베소서 1장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되는 비전이 교회의 교육·선교·자비·정의를 하나로 묶는 신학적 척추라고 보아 왔다. 그래서 그의 가르침은 신자들이 세상 속에서 신학을 방어하는 차원을 넘어, 문화와 학문, 경제와 기술의 영역에서 창조적 공헌을 통해 선교의 지평을 넓혀 가도록 격려한다. 신학은 신학교 강의실이나 강단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터와 거리, 미디어와 예술의 한복판에서 공공선을 위해 봉사할 때, 교리는 사람을 살리는 지혜가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의미의 ‘살아 있는 교리’를 추구한다.
리더십의 윤리도 중요하다. 그는 명령과 통제보다 경청과 동행, 권한 위임과 세움을 가치 있게 여긴다. 바울이 디도와 디모데 같은 동역자들을 신뢰하고, 때론 권면하고 때론 위임하며 교회를 세워 갔듯, 장재형목사의 사역에는 사람을 키우는 기쁨이 중심에 있다. 교회 개척과 선교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복음으로 빚어진 인격이 또 다른 인격을 세우는 느리고도 확실한 방식이 교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공동체는 실수와 배움, 갈등과 화해를 지나며 성숙한다. 그래서 목회란 완성된 모델을 복제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좇아 매 순간 최선의 순종을 선택하는 여정이다. 장재형목사는 그 여정 속에서 멈추어 성찰하고, 확신이 주어질 때 과감히 나아가며, 필요하면 돌아가는 담대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태도는 장재형목사가 각 현장에서 보여 준 실천적 지혜의 공통분모다.
선교적 상상력은 늘 현실의 한계를 넘어선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 제도와 정책의 제약, 세속화와 상대주의의 도전은 오늘의 교회가 마주한 현실이다. 그러나 바울이 변하지 않는 진리를 상황에 맞는 지혜로 전했듯, 장재형목사는 변하지 않는 복음을 변화하는 언어로 전하는 법을 공동체가 배우도록 이끈다. 미디어와 IT, 예술과 교육의 접점에서 복음주의 신앙은 새로운 어휘를 얻고, 신자들은 일상의 자리에서 선교사로 선다. 이것이 곧 ‘흩어진 교회’의 비전이다. 주일에 모여 예배하던 교회가 월요일에는 삶터로 흩어져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공적 담론을 책임 있게 이끌며, 전문성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정직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올리벳대학교와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은 이 비전을 구체화하는 훈련장이자 실험실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場)들 안에서 장기적으로 사람을 세우고, 세대를 잇는 리더십을 일으키며, 지역과 문화의 울타리를 넘어 복음을 번역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결국 고린도후서의 마지막 고백처럼, “과거에 건지셨고 지금도 건지시며 이후에도 건지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소망이 장재형목사의 사역을 떠받친다. 그는 어려움과 오해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루실 일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간다. 복음의 길은 넓지 않지만 확실하다. 약함 속에서 완전해지는 은혜를 배운 사람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바울이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고 요청했듯, 오늘 우리는 장재형목사와 더불어,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같은 마음으로 섬기는 수많은 목회자와 선교사들과 더불어 서로를 위해 기도함으로 이 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 이 여정의 핵심은 분명하다. 복음은 변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여전히 위로하시고 건지신다. 교회는 연합할수록 강해지고, 교회 개척과 선교는 세대와 문화를 넘어 계속될 것이다. 이 길 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인내, 십자가 아래에서 다시 일어서는 용기, 그리고 서로를 위한 간구다. 그런 의미에서 장재형목사의 발걸음은 바울의 고백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들려준다. 그는 우리를 건지신 하나님을 의지해 내일을 소망하며, 진리와 위로로 사람을 세우는 교회의 고전적 사명을 오늘의 시간 속에서 새롭게 이어 간다.
Le passage de Romains 12, versets 1 à 13, présente l’enseignement concret de l’apôtre Paul sur la manière dont nous, en tant que personnes sauvées, devons mener notre vie. Dans les chapitres 1 à 8 de l’Épître aux Romains, Paul a enseigné le profond mystère du salut. Puis, dans les chapitres 9 à 11, il a expliqué la signification historique d’Israël et de la Nouvelle Israël. À travers ce cheminement, nous comprenons qu’au sein de l’histoire du salut de Dieu, il existe une « histoire centrale » (主流史) et une « histoire périphérique » (周邊史), et que cette histoire centrale se déploie au travers du peuple élu de Dieu. Dans ce contexte, nous voyons à quel point il est crucial de saisir ce qu’est la “Nouvelle Israël” (New Israel) et comment nous pouvons renaître en tant que Nouvelle Israël en Christ. S’appuyant sur la sotériologie (théologie du salut) et l’histoire théologique exposées dans l’Épître aux Romains,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la nouvelle vie qui commence après le salut et montre de quelle manière il faut vivre en tant que disciple de Jésus-Christ.
La Nouvelle Israël dont Paul parle peut être appliquée à notre propre histoire. Dans l’Ancien Testament, il y avait l’“Ancienne Israël” (Old Israel), peuple choisi. Avec l’avènement du Nouveau Testament, une Nouvelle Israël est apparue, incluant désormais les païens qui reconnaissent Jésus-Christ comme leur Sauveur. Dans les chapitres 9 à 11 de l’Épître aux Romains, Paul explique comment cette Nouvelle Israël s’est formée et comment le plan du salut de Dieu s’est étendu. L’Ancienne Israël, désobéissante, est comparée à des branches retranchées, tandis que les païens ont été greffés pour combler l’espace laissé vide. C’est ainsi que l’Église a vu le jour. De ce fait, nous qui croyons en Jésus aujourd’hui appartenons à la “Nouvelle Israël” et sommes appelés à former l’histoire centrale au sein du plan divin. Nous sommes ce que l’on nomme cette “minorité créative” (creative minority).
Pour comprendre plus précisément cette notion, il est utile d’examiner l’épisode de Genèse 6 concernant les “fils de Dieu” et les “filles des hommes”. Les “fils de Dieu” y désignent ceux que Dieu a choisis et mis à part. Toutefois, ils se sont mariés avec les “filles des hommes” et se sont mêlés au monde, ce qui a abouti au jugement sous les eaux du déluge à l’époque de Noé. Jésus a déclaré : « Ce qui arriva du temps de Noé arrivera de même aux jours du Fils de l’homme » (Lc 17:26). Il nous prévient ainsi qu’un jugement peut s’abattre si le peuple élu de Dieu s’immerge dans le péché du monde. Le pasteur David Jang insiste à plusieurs reprises sur ce point dans ses prédications : nous ne devons pas nous associer au monde, mais vivre en tant que peuple saint, mis à part dans le Christ. Nous ne devons pas nous conformer à l’esprit de ce siècle, mais être transformés par le renouvellement de l’intelligence (Rm 12:2) pour discerner la volonté de Dieu, bonne, agréable et parfaite.
Au chapitre 8 de l’Épître aux Romains, Paul affirme que « la création attend avec un ardent désir la révélation des fils de Dieu ». Car c’est lorsque les enfants de Dieu se lèvent, que la Nouvelle Israël surgit, que le Royaume de Dieu s’établit dans ce monde. Le pasteur David Jang relie ce fait à la mission eschatologique de l’Église. Après avoir reçu le salut, il nous est indispensable de saisir la portée de l’eschatologie. Non pas simplement pour deviner les signes de la fin des temps et trembler, mais pour prendre conscience que nous sommes appelés à rendre le “Royaume de Dieu” tangible sur cette terre. Les images de « ceux qui lavent leurs robes » dans Genèse 9 et 49, ainsi que dans Apocalypse 22, symbolisent le fait de “purifier ses actes”. Si nous avons été pardonnés par la croix du Christ, nous devons continuer, dans notre vie de tous les jours, à laver nos vêtements pour qu’ils restent purs. Renoncer aux habitudes pécheresses qui appartiennent au monde et vivre dans la sainteté, voilà la marque de la Nouvelle Israël.
La progression logique de Paul, qui expose la sotériologie (Rm 1-8), puis l’histoire (Rm 9-11) avant de parvenir à la mise en pratique (Rm 12), est très cohérente. Ceux qui sont sauvés et qui comprennent qu’ils sont la Nouvelle Israël dans l’histoire de Dieu se demandent alors : “Comment vivre désormais ?” La réponse est : “Faites de toute votre vie un culte spirituel.” La vie de celui qui est sauvé est en elle-même un culte à Dieu, et ce culte ne se limite pas à la simple célébration dans l’enceinte de l’église, mais s’étend à tous les domaines de l’existence. Le pasteur David Jang martèle ce message dans ses prédications et lors des cultes : “Notre vie doit être un culte.”
Ainsi, Paul nous exhorte : « Offrez votre corps comme un sacrifice vivant, saint et agréable à Dieu » (Rm 12:1). Il s’agit là d’une offrande de soi à Dieu, d’une consécration totale de notre vie. Ce n’est plus vivre pour soi-même, mais se sacrifier pour autrui et le servir. Le monde, en général, place ses intérêts personnels avant tout. Mais nous, appelés à devenir disciples de Jésus, devons choisir d’abord la voie du sacrifice au profit de notre prochain. Voilà la voie de la Nouvelle Israël, la marque distinctive de ceux qui assument leur rôle de minorité créative dans l’histoire, en tant qu’“histoire centrale”.
Paul renchérit en déclarant : « Ne vous conformez pas au siècle présent, mais soyez transformés par le renouvellement de l’intelligence, afin de discerner quelle est la volonté de Dieu, ce qui est bon, agréable et parfait » (Rm 12:2). “Le siècle présent” se réfère aux valeurs et aux courants qui dominent le monde, régis par la convoitise et l’égoïsme, par le calcul égoïste des avantages et des inconvénients. Le chrétien, lui, ne doit pas se laisser emporter par ces dérives, mais doit constamment renouveler son cœur. Renouveler son cœur, c’est revêtir les sentiments de Jésus-Christ et se soumettre à la volonté de Dieu telle qu’énoncée dans la Parole.
Le pasteur David Jang insiste sur la nécessité d’“un regard clair sur l’histoire” et de “l’appel eschatologique”. Il ne s’agit pas simplement d’un salut individuel, mais de la réunion de ceux qui sont sauvés au sein d’une communauté d’Église ; de comprendre le rôle que cette Église doit jouer dans le monde ; et, plus largement, de discerner la mission à remplir dans le flot global de l’histoire du salut. L’enseignement de Paul sur Israël et la Nouvelle Israël révèle aux chrétiens l’objectif du “choix divin”. Être choisi par Dieu ne devrait jamais conduire à l’orgueil ni à l’arrogance, mais plutôt nous pousser à nous abaisser pour servir et sacrifier davantage.
L’histoire de Jacob dans la Genèse illustre bien ce principe. Quand il se réconcilie avec Ésaü, il se prosterne sept fois devant son frère, ce qui favorise leur paix. Jésus va plus loin en disant : « Je ne te dis pas jusqu’à sept fois, mais jusqu’à soixante-dix fois sept fois » (Mt 18:22). Ce commandement révèle que, dans l’Église comme dans la vie de chacun, et même dans les relations sociales et entre nations, la solution ultime aux conflits est la réconciliation et le pardon. Le pasteur David Jang ne cesse de souligner l’importance de “détruire les murs de séparation” grâce à l’esprit de la croix. Dans Éphésiens 2, verset 16, Paul dit que Jésus a « tué l’inimitié par la croix ». La croix est donc le lieu où s’incarnent le pardon et la réconciliation de Dieu. L’Église doit prolonger cet esprit de la croix, abattre les murs qu’érige le monde et promouvoir la koinonia (κοινωνία).
Le terme grec “koinonia” signifie “communion” ou “fraternité”. Cependant, il ne s’agit pas d’une simple convivialité, mais d’une communion spirituelle qui détruit le mur de la séparation, rendue possible par la croix. Paul a intensément travaillé à la “kerygma” (κήρυγμα), la proclamation de la Parole du salut. Et, à la suite de cette annonce, il a exhorté ceux qui la recevaient à établir une communion réelle, la koinonia. Si nous avons bien assimilé la sotériologie et l’histoire du salut, l’étape suivante est de briser les murs au sein de l’Église pour parvenir à une véritable communion. Quand l’amour fraternel se concrétise à travers cette communion, nous offrons au monde un témoignage authentique de la différence que constitue la Nouvelle Israël.
Mais cela ne s’arrête pas à la koinonia. Une fois la koinonia établie, il faut aller vers la “diakonia” (διακονία). Le terme “diakonia” désigne le “service” ou l’“assistance”. Dans Romains 12, verset 13, Paul conseille de « pourvoir aux besoins des saints et d’exercer l’hospitalité ». Voilà une illustration concrète de la diakonia. L’amour doit trouver une expression concrète dans la satisfaction des besoins d’autrui. L’apôtre Jacques remarque : « Si l’un de vous dit à son frère : “Va en paix, chauffe-toi et rassasie-toi”, sans pourvoir à ses besoins corporels, à quoi cela sert-il ? » (Jc 2:16). L’amour ne peut se limiter aux paroles ; il doit se manifester par des actes.
Le passage de Romains 12, versets 1 à 13, résume le cœur même du “culte pratique” que nous devons rendre. Paul nous met en garde : « Ne vous conformez pas au siècle présent ; renouvelez sans cesse votre intelligence. Formez un seul corps dans le Christ et prenez soin les uns des autres en tant que membres. Enfin, pourvoyez aux besoins des saints. » Le pasteur David Jang exprime cette recommandation à sa manière en incitant concrètement à offrir davantage à ceux qui sont dans le besoin. Par exemple, si l’on a besoin d’un ordinateur portable sur un champ de mission, il ne faut pas se contenter d’en envoyer un seul, mais en offrir autant que possible. C’est ce que Jésus enseigne quand Il dit : « Si quelqu’un te force à faire mille pas, fais-en deux mille avec lui » (Mt 5:41) et « Donne à celui qui te demande, ne te détourne pas de celui qui veut emprunter de toi » (Mt 5:42). Cette mise en pratique montre l’obéissance radicale à la parole du Christ. L’Église, en tant que Nouvelle Israël, doit pourvoir aux besoins de ses membres et former un seul corps pour répandre l’Évangile et l’amour de Dieu dans le monde entier.
Au chapitre 12, l’objectif principal de Paul est de dire que ceux qui sont sauvés, qui connaissent l’histoire de Dieu, doivent désormais prouver leur foi par une “vie pratique”. Le salut n’est pas qu’un savoir doctrinal, il doit se traduire par un changement de vie. Si nous portons en nous l’amour du Christ, nous emprunterons naturellement un chemin contraire au siècle présent, un chemin où nous nous aimons et nous respectons mutuellement, partageant nos biens dans un esprit de sacrifice. C’est ainsi que nous présentons un “culte spirituel”.
Le pasteur David Jang enseigne souvent que le véritable culte englobe la vie tout entière, et non seulement l’office célébré dans l’église. L’Église doit bâtir des relations fraternelles, établir des centres de mission dans différents pays, s’entraider, et partager sans compter pour élargir le Règne de Dieu. Comme dans Ézéchiel 37, où la structure osseuse du corps prend vie quand muscles et chair viennent s’y ajouter, il ne suffit pas que l’Église possède une charpente spirituelle solide. Il faut aussi la “substance” de l’amour et du service. Puisque Dieu nous a déjà accordé Sa grâce pour bâtir l’ossature, il est temps d’y ajouter les muscles et la chair pour en faire une communauté remplie de vie. Voilà en quoi consiste l’esprit de la diakonia et le commandement de Romains 12 – “pourvoyez aux besoins des saints.”
Toute cette instruction s’enracine dans l’amour que Jésus-Christ nous a révélé par sa propre vie. Le Seigneur a demandé à Simon, fils de Jonas : « M’aimes-tu ? », et Il a répondu : « Pais mes brebis » (Jn 21:15-17). Si nous aimons le Seigneur, il nous faut le prouver en “nourrissant les brebis”. Dans l’Église comme dans la communauté, et dans le monde missionnaire, ce “nourrir” englobe tout l’éventail des besoins concrets. C’est précisément la voie que doit emprunter la Nouvelle Israël décrite en Romains 12 et sur laquelle s’appuie l’enseignement pratique du pasteur David Jang.
2. La diakonia du croyant et le culte pratique
Pour vivre en tant que Nouvelle Israël, il faut nécessairement pratiquer la diakonia et un culte concret. Les exhortations de Paul dans Romains 12 expliquent comment rendre un véritable culte à Dieu dans la vie quotidienne. Le pasteur David Jang affirme que cet enseignement de Paul complète la doctrine du salut (Rm 1-8) et la théologie historique d’Israël et de la Nouvelle Israël (Rm 9-11) par la mise en pratique. En effet, aussi vastes que soient nos connaissances doctrinales ou historiques, si l’amour ne se traduit pas dans la vie, ce savoir est vain.
Paul déclare dans Romains 12, verset 1 : « Je vous exhorte donc, frères, par les compassions de Dieu, à offrir vos corps comme un sacrifice vivant, saint et agréable à Dieu, ce qui sera de votre part un culte raisonnable. » L’expression « Je vous exhorte donc » (ou « Par conséquent ») indique que tout ce qui précède sur le salut et l’histoire d’Israël culmine ici. Comment celui qui est sauvé doit-il vivre ? En s’offrant lui-même comme un sacrifice vivant. Auparavant, on présentait des sacrifices d’animaux pour adorer Dieu, mais désormais, grâce à la croix de Jésus-Christ, les croyants doivent s’offrir eux-mêmes tout entiers. Et parce que c’est un sacrifice vivant et permanent, c’est un “culte spirituel”.
Pour que la vie soit un culte, il faut d’abord veiller à ne pas se conformer aux valeurs du monde, mais plutôt à renouveler son intelligence chaque jour (Rm 12:2). Le monde est dominé par la quête personnelle du bien-être et l’égoïsme, alors que les enfants de Dieu doivent privilégier le sacrifice de soi et l’amour du prochain. Voilà pourquoi Paul explique comment ceux qui ont reçu divers dons spirituels doivent les mettre au service des autres, en tant que membres du même corps (Rm 12:3-8). Et il conclut en insistant : « Pourvoyez aux besoins des saints et exercez l’hospitalité » (Rm 12:13). “Pourvoir aux besoins des saints” ne se limite pas aux aides financières ou matérielles : cela englobe aussi le réconfort, l’empathie, l’accompagnement spirituel, et bien d’autres formes de soutien.
Le pasteur David Jang définit Romains 12, verset 13, comme l’essence de la diakonia et l’une des missions les plus importantes pour l’Église. Celle-ci doit annoncer la Parole, la “kerygma”, puis cultiver la joie de la communion fraternelle, la koinonia. Cependant, il ne faut pas s’arrêter là : l’amour de Christ doit déborder pour se concrétiser en assistance et en service à autrui, ce qui est la diakonia. Quand cette diakonia s’exerce pleinement, la communauté ecclésiale ressemble à ce que décrit Ézéchiel 37 : des os animés, enveloppés de chair et de muscles, se levant en une puissante armée.
Concrètement, comment « pourvoir aux besoins des saints » ? Le pasteur David Jang donne de nombreux exemples : si un champ de mission à l’étranger a besoin d’ordinateurs, de véhicules ou de matériel médical, il faut répondre généreusement à ces demandes. C’est mettre en pratique Matthieu 5, versets 41-42, lorsque Jésus enseigne : « Si quelqu’un te force à faire mille pas, fais-en deux mille avec lui ; donne à celui qui te demande, ne te détourne pas de celui qui veut emprunter de toi. » L’attitude de disciple consiste à en faire plus que ce qui est demandé. Cet amour se concrétise non par de simples déclarations de type “Je t’aime”, mais par des gestes réels qui satisfont les besoins.
Cette attitude ne se limite pas aux actions individuelles ou communautaires locales. Elle doit s’étendre à une “vision missionnaire mondiale”, avec une collaboration en réseau. Le pasteur David Jang évoque souvent le concept de G20, où les Églises établies dans différents pays coopèrent, s’entraident et œuvrent à la fondation d’autres Églises au-delà des frontières. Certaines Églises abondent en ressources matérielles mais manquent de ressources spirituelles, tandis que d’autres disposent de nombreux ouvriers mais manquent de moyens financiers. Si l’Église forme un seul corps, elle peut combler ces lacunes, permettant à l’Évangile de se répandre avec une grande puissance à travers le monde. Voilà une diakonia élargie, qui répond concrètement aux besoins des saints à une échelle internationale.
Dans Romains 12, versets 9 et suivants, on lit : « Que l’amour soit sans hypocrisie. Ayez le mal en horreur ; attachez-vous fortement au bien. Par amour fraternel, soyez pleins d’affection les uns pour les autres, rivalisez d’estime réciproque. Ayez du zèle, et non de la paresse. Soyez fervents d’esprit, servez le Seigneur. Réjouissez-vous en espérance, soyez patients dans la tribulation, persévérez dans la prière, pourvoyez aux besoins des saints, exercez l’hospitalité. » Toutes ces exhortations relèvent de la pratique. Aimer, mais comment ? En honorant l’autre, en servant le Seigneur avec ardeur, en endurant l’épreuve avec patience, en priant sans cesse, et finalement, en apportant une aide concrète. Si quelqu’un exprime un besoin, nous devons non seulement y répondre, mais aussi discerner les besoins qu’il n’oserait pas formuler.
Lorsque l’Église pratique ainsi la diakonia, le monde, en observant l’Église, découvre le visage de Jésus-Christ. Dans l’Église primitive, les incroyants s’exclamaient : « Voyez comme ils s’aiment ! » De même aujourd’hui, dans une société en quête de sens, la mise en pratique des exhortations de Romains 12 révélera aux yeux de tous un amour authentique et altruiste. C’est ainsi que l’Église accomplit son rôle de sel et de lumière et qu’elle propage efficacement l’Évangile.
Cependant, cette mise en pratique n’a rien d’aisé. Par nature, l’homme est centré sur lui-même et continue d’être vulnérable à l’influence du siècle présent. C’est pourquoi Paul exhorte : « Ne vous conformez pas au siècle présent. » De plus, pour qu’une véritable diakonia voie le jour, l’Église doit d’abord s’employer à “détruire les murs” qui se dressent en son sein. Dans l’Épître aux Éphésiens, Paul décrit la croix comme la puissance qui a abattu « l’inimitié ». Ainsi, les préjugés, les discriminations, les conflits internes, les malentendus, tout doit être absorbé par l’esprit de la croix. C’est la condition nécessaire à la koinonia, et sans cette koinonia, la diakonia ne peut vraiment s’épanouir.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souvent que la lecture de la Bible doit susciter, à certains moments, une certaine “crainte” devant l’exigence divine. Par exemple, lorsque nous lisons le passage où Jacob se prosterne sept fois devant Ésaü (Gn 33:3), nous nous demandons : “Suis-je capable d’un geste de réconciliation aussi sincère ?” De même, lorsque Jésus dit “Pardonne jusqu’à soixante-dix fois sept fois” (Mt 18:22), nous ressentons un frisson face à un pardon qui dépasse nos limites humaines. Or, cette crainte ne vise pas à nous plonger dans le désespoir, mais à nous stimuler à progresser, par la grâce du Saint-Esprit, vers ce niveau d’amour. Si l’Église vivait une réconciliation et un pardon répétés soixante-dix fois sept, elle manifesterait un amour introuvable ailleurs dans le monde.
Voilà ce qu’est la vie de la “Nouvelle Israël”. Si l’Ancienne Israël a chuté pour ne pas avoir gardé la Loi, la Nouvelle Israël, guidée par la croix du Christ, se repent chaque jour et s’humilie pour servir ses frères. Dans Romains 12 et dans d’autres épîtres (1 Corinthiens, Éphésiens, Galates), Paul ne cesse de répéter : « Servez-vous les uns les autres par amour. » C’est sur ce “service d’amour” que se distingue l’Église par rapport au monde, et c’est là que la diakonia atteint sa plénitude.
De plus, la diakonia est étroitement liée à l’annonce de l’Évangile. Une aide purement humanitaire ou philanthropique a ses limites. Il faut y ajouter le nom de Jésus-Christ. Dans son ministère missionnaire, Paul a lui-même secouru les Églises, collecté des offrandes pour l’Église de Jérusalem, et favorisé l’unité entre Juifs et païens. Voilà un modèle de diakonia. Il ne suffit pas d’agir avec générosité et chaleur humaine ; il faut que l’amour et le message de Jésus-Christ s’y manifestent clairement, afin que ceux qui en bénéficient réalisent : « Voilà l’amour du Christ. »
Le culte pratique de la diakonia commence à l’intérieur de la communauté ecclésiale. Les croyants doivent tout d’abord apprendre à identifier et combler les besoins mutuels. Alors seulement, l’amour peut rayonner hors de l’Église, dans la société, à travers diverses actions de solidarité et de partage.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que si l’Église néglige la prise en charge de ses membres, même les opérations missionnaires ou caritatives les plus brillantes vers l’extérieur manqueront de crédibilité. « Pourvoir aux besoins des saints » inclut l’idée qu’il faut commencer par regarder autour de soi, dans la propre communauté, pour veiller aux besoins concrets des frères et sœurs. Lorsque l’amour abonde dans la communauté, il se diffuse naturellement vers l’extérieur, devenant ainsi “la lumière du monde”.
Le commandement de Romains 12 – « Pourvoyez aux besoins des saints, exercez l’hospitalité » – est d’une importance capitale pour l’Église d’aujourd’hui, et chaque croyant doit se demander si son “culte” est véritable. Le culte ne se réduit pas à une heure passée dans le temple. Après avoir reçu la grâce et la Parole durant le culte, nous devons agir concrètement pour aider le prochain, les communautés de mission ou les frères et sœurs à l’étranger. Selon Paul, la formule “La vie est un culte” prend toute sa réalité lorsque cette diakonia est mise en œuvre.
Le pasteur David Jang répète souvent : « Si nous aimons le Christ, mettons en pratique la parole : “Pais mes brebis.” » Nourrir ne signifie pas seulement donner de la nourriture ; c’est aussi fournir la Parole de Dieu pour soutenir spirituellement, apporter les ressources matérielles nécessaires et encourager ceux qui sont dans la détresse. Dans cette optique, chaque membre de l’Église doit mobiliser les dons qu’il a reçus pour contribuer à l’œuvre de service. Certains excellent dans l’enseignement, d’autres dans la consolation ; certains possèdent la capacité financière de partager, d’autres ont des talents administratifs qui rendent l’organisation plus efficace. Lorsque tous ces dons se fédèrent, l’Église agit avec une force considérable.
Ainsi, la diakonia est comme la musculature dans un corps. Sans muscles, le squelette ne peut pas bouger ni exercer la moindre force. De même, la communauté de l’Église, sans amour concret et sans service, demeure inerte, telle “des os desséchés”. La « grande armée » prophétisée dans Ézéchiel 37 correspond à une Église où l’Esprit Saint insuffle la vie et où des tendons et de la chair recouvrent la charpente. Si nous possédons déjà la structure solide de la foi en Jésus-Christ, il nous faut ajouter ces muscles et cette chair que sont le service et l’amour. Sans cela, nous restons des “os secs”.
En mettant en pratique l’enseignement de Romains 12, nous découvrons le véritable “discipolat” voulu par Jésus. Il nous a dit : « Aimez-vous les uns les autres, comme je vous ai aimés » (Jn 13:34), et encore : « Je vous ai donné un exemple, afin que vous fassiez comme je vous ai fait » (Jn 13:15). Le Christ a lavé les pieds de ses disciples, Il a nourri la foule affamée lors du miracle des cinq pains et deux poissons, et Il s’est attablé avec des pécheurs. Toutes ces scènes illustrent la diakonia. Lorsque l’Église reflète cet amour, le monde entrevoit, à travers elle, le Royaume de Dieu et est exposé à l’Évangile.
N’oublions pas que la diakonia ne se réduit pas à un simple geste humanitaire. C’est l’extension de notre “culte spirituel” et l’aboutissement concret du sacrifice que nous offrons à Dieu. Le pasteur David Jang rappelle que l’exhortation de Paul : « Offrez vos corps comme un sacrifice vivant, saint et agréable à Dieu » (Rm 12:1) s’accomplit vraiment lorsque nous nous investissons corps et âme dans cette offrande. Le culte ne se limite pas à de beaux cantiques et un excellent sermon. Il devient un culte “vivant” lorsque, dès la fin du rassemblement, nous nous empressons de pourvoir aux besoins des saints. C’est alors que Dieu agrée ce “culte spirituel.”
Ainsi, Romains 12, versets 1 à 13, décrit la “vie nouvelle en Christ” : s’offrir soi-même en sacrifice vivant, résister aux mentalités du siècle, s’accueillir les uns les autres selon les divers dons, briser les murs par la croix, et manifester un amour tangible à travers la diakonia. Par ce processus, l’Église grandit, et le monde voit en elle l’amour de Jésus-Christ. En arrière-plan se déploie l’“histoire du salut”, souvent mise en avant par le pasteur David Jang : l’histoire totale où Dieu sauve l’humanité du péché, où Il conduit toute chose vers l’accomplissement eschatologique, au centre de laquelle se trouvent la croix, la résurrection du Christ, l’action du Saint-Esprit et l’Église.
Notre mission est en définitive assez simple : « Recevoir la Parole (kerygma), vivre la communion (koinonia) et exercer le service (diakonia). » Ce faisant, nous prouvons que nous sommes des disciples de Jésus et que nous vivons en tant que “Nouvelle Israël,” donnant toute la gloire à Dieu. Romains 12 nous propose un véritable guide pratique sur ce chemin. Si nous sommes sauvés, nous devons nous examiner à la lumière de ce texte : “Est-ce que j’offre vraiment un culte à Dieu par ma vie ? Suis-je en train de pourvoir aux besoins des saints et de pratiquer l’hospitalité ?” L’enseignement du pasteur David Jang nous rappelle ces questions et nous pousse à passer à l’acte.
C’est pourquoi, que ce soit au niveau individuel ou communautaire, nous devons ancrer cette Parole dans notre cœur et la mettre en pratique immédiatement. Si quelqu’un demande de l’aide, ne restons pas à nous demander “Puis-je donner un peu ?”, interrogeons-nous plutôt : “Ne pourrais-je pas donner davantage, avec plus de largesse ?” Voilà l’amour que Jésus nous a montré, et c’est aussi l’esprit de Romains 12. Quand un groupe de croyants adopte un tel style de vie, on pourra reconnaître au premier coup d’œil : “Vraiment, ces gens-là sont des disciples du Christ.” C’est la vie qui suit le salut, la mission de la Nouvelle Israël, et la conclusion pratique de l’Évangile que le pasteur David Jang continue inlassablement de proclamer.
1. The Journey of Being Reborn as the New Israel in Christ
Romans 12:1-13 presents the Apostle Paul’s concrete instructions on how those who have received salvation should now live. Paul expounded on the profound mystery of salvation in Romans chapters 1 through 8, and then, in chapters 9 through 11, he explained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Israel and the New Israel. Through this flow, we realize that within God’s redemptive history, there is both a mainstream (中心史) and a peripheral stream (周邊史). The mainstream is driven by the people chosen by God. Within this context, we find crucial teaching on what the “New Israel” is and how we can be reborn in Christ as this New Israel. Drawing upon the soteriology and historical perspective laid out in Romans, Pastor David Jang emphasizes the new life that begins after salvation and how we must live as disciples of Jesus Christ.
The New Israel Paul speaks of can be applied to our own story. In the Old Testament, there was the Old Israel that had been chosen, and when we move into the New Testament era, we see the emergence of the New Israel, which includes Gentiles who profess Jesus Christ as Savior. In Romans 9-11, Paul explains how the New Israel is formed and how the scope of God’s salvation expands. The Old Israel, in continued disobedience, is compared to branches that are cut off, and the Gentiles are shown as grafted into the empty spaces—this is the origin of the Church. Thus, all who believe in Jesus today belong to the New Israel and are called to be the “creative minority” that shapes the mainstream of God’s plan in history. This point is significant.
To understand this concept more concretely, we need to look at the story of “the sons of God and the daughters of men” in Genesis 6. The “sons of God” there refer to those whom God had chosen and set apart. However, they intermarried with the daughters of men and became mixed with the world, leading eventually to the judgment in Noah’s time. Jesus said, “Just as it was in the days of Noah, so will it be in the days of the Son of Man” (Luke 17:26). His warning was that if those chosen by God become entangled with the world and go down the path of sin, divine judgment can come upon them. This is the very point Pastor David Jang frequently underscores in his messages: We must not compromise with the world but live as those set apart in Christ. Instead of conforming to the pattern of the world, we mus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our minds (Romans 12:2), discerning what is good, pleasing, and perfect in God’s sight.
In Romans 8, Paul declares that “creation waits in eager expectation for the children of God to be revealed.” God’s kingdom is brought forth on earth when the children of God rise up and the New Israel stands. Pastor David Jang connects this to the eschatological calling that the Church must fulfill. After being saved, we must grasp eschatology—not merely to predict signs of the end or to be afraid, but to realize that we are called to establish the kingdom of God here on earth. The imagery of “washing the robes” found in Genesis 9 and 49, and also in Revelation 22, refers to “keeping one’s conduct pure.” Having our sins forgiven at the cross of Jesus Christ, we must continue to wash our robes in everyday life. Abandoning worldly, sinful habits and living a consecrated life is the hallmark of the New Israel.
Paul’s exposition of salvation (Romans 1-8) and history (Romans 9-11) logically leads into the “practical application” of Romans 12. If we are saved and have become God’s New Israel in redemptive history, how then should we live? The answer is that our entire life must become “spiritual worship.” The life of the saved is itself an act of worship—not confined to formal gatherings in the church building, but extending into every facet of daily life. In many of his sermons and services, Pastor David Jang reiterates this message: “Our very lives must be worship.”
Paul exhorts us, “Offer your bodies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pleasing to God” (Romans 12:1). This means dedicating our entire being to God. Rather than living self-centeredly, we must choose a life of self-sacrifice and service for our neighbors. The world typically prioritizes personal interests, but those called as disciples of Jesus Christ should opt first for the path of sacrifice for others. This is the way the New Israel must walk, the way of the creative minority that bears the central narrative in history.
In addition, Paul strongly emphasizes: “Do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so that you may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Romans 12:2). “This world” refers to worldly value systems and trends. The world is dominated by greed for more and by self-interest, weighing pros and cons. But Christians should not be swept along by such currents. We must renew our minds daily. This renewal is about taking on the mind of Christ, which is to obey the will of God as revealed in Scripture.
Pastor David Jang repeatedly teaches that we should have both “eyes to read history” and an “eschatological calling.” We must not remain satisfied with personal salvation alone; it is crucial to see how the redeemed gather to form the Church, how that Church exercises influence in the world, and what mission it fulfills in the broader flow of salvation history. Paul’s teaching on Israel and the New Israel helps us grasp God’s purpose in choosing us. Being chosen should never lead to self-boasting or a sense of privilege; instead, it instructs us to humble ourselves and serve at even lower places because we are chosen.
The story of Jacob in Genesis is particularly instructive on this point. In his reconciliation with Esau, Jacob bowed seven times before his brother, thus restoring peace. Jesus went further, declaring, “Not just seven times, but seventy-seven times” (Matthew 18:22). This underscores that the ultimate solution to personal, communal, and even national or ethnic conflicts lies in “reconciliation and forgiveness.” Pastor David Jang consistently emphasizes this “spirit of breaking down dividing walls,” teaching that the key is found in the spirit of the cross. In Ephesians 2:16, Paul states that God put to death the enmity “by the cross.” The cross is the place where God’s forgiveness and reconciliation become reality. The Church must therefore inherit this spirit of the cross and, in a world that alienates and divides, live out the “koinonia” that breaks down walls.
“Koinonia,” a Greek term meaning “fellowship” or “communion,” is not mere camaraderie but a spiritual fellowship that dismantles barriers through the cross. Paul placed great emphasis on “kerygma,” the proclamation of salvation through the gospel, and then stressed that those who received the Word must develop fellowship in “koinonia.” If we have come to understand salvation (soteriology) and history (the theology of Israel and the New Israel), the next step is to dismantle the dividing walls among us and create true fellowship within the Church. When brotherly love is realized within this fellowship, we display to the world an identity distinct from the world—indeed, the testimony of the New Israel.
But the process does not end with koinonia. Once koinonia is established, we must proceed to “diakonia.” “Diakonia” means “service” or “ministry.” In Romans 12:13, Paul says, “Share with the Lord’s people who are in need. Practice hospitality.” This is a direct picture of diakonia. If we truly love, we must meet others’ needs in tangible ways. The apostle James also highlights this: “If one of you says to them, ‘Go in peace; keep warm and well fed,’ but does nothing about their physical needs, what good is it?” (James 2:16). Love is not merely expressed in words but must be evidenced by actions.
Romans 12:1-13 thus contains the core teaching on what “practical worship” means for us. Paul exhorts, “Do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while also emphasizing, “so in Christ we, though many, form one body, and each member belongs to all the others.” And finally, he concludes: “Share with the Lord’s people who are in need.” Pastor David Jang translates this into our everyday practice, urging us to be all the more generous to those in need. If a mission field needs a laptop, do not stop at sending just one, but if possible, send more. This exemplifies Jesus’ teaching in Matthew 5:41 about going the extra mile and verse 42 about giving to those who ask. It is the posture of a disciple who puts love into action. The Church, as the New Israel, must supply each other’s needs and function as one body to carry the gospel and love to the ends of the earth.
The heart of Paul’s message in Romans 12 is that those who are saved and understand God’s work in history must demonstrate their faith through “practical living.” Salvation is not merely doctrinal knowledge; it must connect to a transformed life. By embracing the love of Christ, choosing a path opposite to worldly values, loving and respecting one another, and ultimately sharing what is ours with others in sacrificial love, we offer “spiritual worship.” Pastor David Jang reiterates that worship is completed not merely in the sanctuary’s formal gathering but also in our daily acts of service. The Church should raise global mission bases, assist one another, and bountifully provide the necessary resources, thereby expanding God’s kingdom. The vision of Ezekiel 37 that speaks of the strengthening of spiritual “bones” (structure) is insufficient without “tendons and flesh” (practical love and service). Once God has established the bones by His grace, we must add tendons and flesh to build a living, vibrant Church. This is the spirit of diakonia and the concrete command in Romans 12 to “share with the Lord’s people who are in need.”
All of these teachings are rooted in the love Jesus Christ personally demonstrated. The Lord asked Peter,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and then commanded, “Feed my sheep” (John 21:15-17). If we truly love the Lord, we must prove it by feeding His sheep. This includes caring for the Church and its community, supporting mission fields and neighbors in practical ways. This is the path for those called to be the New Israel, the practical direction of Romans 12, and the essence of Pastor David Jang’s teaching.
2. The Diakonia of the Saints and Practical Worship
To live as the New Israel, we must necessarily engage in diakonia and practical worship. Paul’s specific instructions in Romans 12 show believers how to worship through daily life. According to Pastor David Jang, Paul’s teachings here complete the soteriological discussion (Romans 1-8) and the historical discourse on Israel and the New Israel (Romans 9-11). No matter how thoroughly we know doctrine or understand redemptive history, such knowledge is useless if we fail to practice love in our lives.
In Romans 12:1, Paul declares: “Therefore, I urge you, brothers and sisters, in view of God’s mercy, to offer your bodies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pleasing to God—this is your true and proper worship.” The word “Therefore” indicates that all the preceding statements about salvation and history now converge on this conclusion. How must those who are saved live? The answer is to offer ourselves as a living sacrifice. Previously, people offered animal sacrifices to God, but now, because we have been saved through the cross of Jesus Christ, we are the sacrifice, dedicating our entire lives to Him. Since we are offered in a living state, this becomes “spiritual worship.”
For life to become worship, we must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e world but be renewed in our minds daily (Romans 12:2). The world is focused on self-satisfaction and self-interest, but the child of God shifts focus to self-sacrifice and love of neighbor. Hence, Paul provides detailed guidance on how to utilize our gifts and serve one another as members of one body (Romans 12:3-8). This culminates in “Share with the Lord’s people who are in need. Practice hospitality” (Romans 12:13). “Sharing with the Lord’s people” is not limited to giving financial help to those who lack material resources. It also includes providing spiritual comfort, empathy, and care—meeting all kinds of “needs.”
Pastor David Jang interprets Romans 12:13 as the essence of diakonia, describing it as the most important ministry the Church must practice. The Church proclaims the message (kerygma), and those who receive the Word share fellowship (koinonia). But we cannot stop there. The overflow of Christ’s love must manifest in tangible acts of service that meet needs—this is diakonia. When this diakonia flourishes, the Church implements the vision of Ezekiel 37, in which dry bones come to life and become a vast army.
Practically speaking, how do we “share with the Lord’s people who are in need”? Pastor David Jang offers many examples. If someone on the overseas mission field needs a laptop, a vehicle, or medical supplies, we should supply them generously. This obeys Jesus’ words in Matthew 5:41-42: “If anyone forces you to go one mile, go with them two miles. Give to the one who asks you, and do not turn away from the one who wants to borrow from you.” If someone requests one thing, we should be prepared to give two. This shows the posture of a disciple. Love is not proven by saying “I love you” but by meeting real needs in concrete action.
Further, this concept extends beyond individual or local church efforts to a global network of cooperation in “world missions.” Pastor David Jang uses the framework of “G20” to describe how churches in different countries should cooperate to assist one another and establish new churches elsewhere. Some mission fields have abundant financial resources but lack spiritual ones; other fields have ample human resources but are financially weak. When churches collaborate as one body to meet one another’s needs, the gospel is powerfully spread worldwide. This is diakonia on a global scale.
Romans 12:9 and following states, “Love must be sincere. Hate what is evil; cling to what is good. Be devoted to one another in love. Honor one another above yourselves. Never be lacking in zeal, but keep your spiritual fervor, serving the Lord. Be joyful in hope, patient in affliction, faithful in prayer. Share with the Lord’s people who are in need. Practice hospitality.” All of these exhortations involve practical steps. It tells us to love, but also shows how: honor one another, be diligent in serving the Lord, remain hopeful under trial, persevere in prayer, and ultimately provide real help. When someone expresses a need, we must not simply tell them, “I hope everything goes well for you,” but actively work to fulfill that need. Moreover, we should be attentive to “the needs they haven’t yet voiced.”
When a church community engages in diakonia like this, the world sees the character of Jesus Christ in the Church. Just as in the early church era, nonbelievers exclaimed, “See how they love one another!” so too in our modern times, if the Church practices the teachings of Romans 12 in a society starved for genuine love and service, it will cause great impact. This is the Church’s calling to be salt and light, and it becomes a powerful channel for spreading the gospel.
However, such practice is not easy because human nature is self-centered and prone to worldly influences. This is why Paul pleads, “Do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Also, for diakonia to flourish, we must first work to “tear down walls” within the Church. In Ephesians, Paul notes that the cross breaks down hostility—meaning that we must confront divisions, biases, discrimination, and misunderstandings inside the Church through the spirit of the cross. Through this process, koinonia is formed, and only then can diakonia truly unfold.
Pastor David Jang frequently mentions how we should experience a sense of holy fear when reading Scripture. For example, upon reading the scene where Jacob bows seven times before Esau (Genesis 33:3), we might ask ourselves, “Could I really make such a pure gesture of reconciliation?” Similarly, when Jesus says “not seven times but seventy-seven times” (Matthew 18:22) about forgiveness, we might tremble at a command that surpasses our human limits. Yet such fear does not drive us to despair; rather, by the help of the Holy Spirit, it motivates us to approach that level of love. If the Church truly practiced forgiving seventy-seven times, we would witness a love of a magnitude rarely found in the world.
This is the lifestyle of the “New Israel.” If the Old Israel stumbled because it could not keep the Law, we who are called as the New Israel must fix our eyes on the cross of Jesus Christ, repenting daily and humbling ourselves to serve the saints. Throughout Romans 12, and also in 1 Corinthians, Ephesians, and Galatians, Paul tirelessly repeats the command: “Serve one another in love.” The distinguishing mark of the Church, set apart from the world, is precisely this “practice of love,” and this ultimately fulfills diakonia.
Moreover, diakonia is closely tied to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Simple charitable or humanitarian acts have their limits; we must do such works in the name of Jesus Christ. Paul, too, raised funds to support the Jerusalem church during his missionary journeys, connecting Jewish and Gentile believers into one body through acts of service. We must follow this example in our practice of diakonia. Our service should not merely be perceived as “human kindness,” but should lead people to say, “This is the love of Jesus Christ,” revealing an undergirding gospel message.
Practical worship as diakonia starts within the Church. By tending to each other’s needs among believers, we learn how to care, and that love naturally overflows into social service and public acts of compassion. Pastor David Jang warns that if the Church fails to care for its own members internally, no matter how flashy its external mission activities, the Church’s sincerity will be questioned. “Sharing with the Lord’s people who are in need” also implies carefully observing the circumstances of those closest to us. When love abounds in our inner circle, it will inevitably extend outward, becoming the true “light of the world.”
Romans 12’s command to “share with the Lord’s people who are in need and practice hospitality” remains a core directive that modern churches must reclaim, and it is also the “true worship” every believer must re-examine. Worship cannot be limited to one hour in a sanctuary; rather, we receive grace and the Word in that hour so we can apply it to everyday life, meeting the practical needs of our neighbors, mission fields, and fellow believers around the globe. Paul’s statement that “our life itself is worship” reaches its completion only when diakonia is put into action.
Pastor David Jang insists that if we truly love Christ, we must obey the command, “Feed my sheep.” To feed them is not merely to offer food but also to supply the spiritual nourishment of the Word, the material resources people lack, and the emotional support the weary soul needs. The Church community must collaborate in this “sheep-feeding ministry,” mobilizing individuals according to their gifts. Some excel at teaching, others at counseling and pastoral care; still others, with financial means, can share their resources, and those with administrative skills can organize efficiently. When diverse gifts unite to form one body, the Church exerts tremendous influence.
In this sense, diakonia is like muscle in the body. While a solid skeletal frame is essential, bones alone cannot function without muscles. Likewise, the Church, though possessing strong spiritual structure (doctrine, faith), needs the “flesh and sinews” of practical love and service to operate powerfully. Ezekiel 37’s vision of a “vast army” illustrates just this. Dry bones come to life through the Spirit, but they also need connecting tendons and flesh. If we already have the framework of faith in Jesus Christ, we now must add the muscle and flesh of service and love. Without these, the Church remains but a collection of “dry bones.”
As we practice the message of Romans 12:1-13, we learn true discipleship. Jesus told the disciples,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John 13:34) and “I have set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do as I have done for you” (John 13:15). He personally washed the disciples’ feet, fed the hungry crowd with five loaves and two fish, and sat at the table with sinners. Each of these scenes is an example of diakonia. When the Church reflects such love, the world catches a glimpse of God’s kingdom through the Church and gains an opportunity to encounter the gospel.
We must remember that all this diakonia is not merely philanthropic work but an extension of “spiritual worship”—the living sacrifice we owe as those who have received salvation. Pastor David Jang reiterates Paul’s exhortation in Romans 12:1 that we should become “living sacrifices, holy and pleasing to God.” True worship is ultimately fulfilled in the sphere of self-sacrifice. Beautiful music and good preaching in the sanctuary alone do not complete worship. Only when we devote ourselves wholeheartedly to meeting the needs of the saints after the service does God receive true spiritual worship.
Therefore, the new life in Christ described in Romans 12:1-13, which belongs to those who have been saved, culminates in diakonia, whereby we offer ourselves as living sacrifices, stand against worldly values with renewed minds, honor each other’s diverse gifts in the Church, destroy the dividing wall through the cross, and serve the brethren in tangible ways. Through this process, the Church grows, the world sees the love of Jesus through the Church, and all of it aligns with God’s overarching plan of salvation. As Pastor David Jang frequently stresses, redemptive history is the grand narrative of God saving humanity from sin and bringing everything to its eschatological fulfillment. At its center stand the cross and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the work of the Holy Spirit, and the Church.
Our task is simple: hear the Word (kerygma), share fellowship (koinonia), and demonstrate love in service (diakonia). By doing so, we display our identity as the New Israel, glorify God, and follow Jesus’ teaching. Romans 12 is a condensed guide to all these practical steps. All who have received salvation should examine themselves in the light of these teachings: “Am I truly worshiping God through my life? Am I sharing with those who are in need? Am I genuinely practicing hospitality?” Pastor David Jang’s message reawakens these questions, urging us to take concrete action.
Hence, both as individuals and as a church community, we must not only remember today’s teaching but also promptly put it into practice. When someone expresses a need, instead of first asking, “How much am I able to give?” we should ask, “How can I give more, more generously?” That is the love Jesus demonstrated and the essence of true worship described in Romans 12. A community of believers who truly embrace this will be clearly recognized as “disciples of Christ” by the world. This is the life after salvation, the calling of the New Israel, and the practical conclusion of the gospel that Pastor David Jang persistently proclaims.
1. El camino para renacer como Nuevo Israel en Cristo
La enseñanza de Romanos 12:1-13 es una instrucción concreta del apóstol Pablo acerca de cómo debemos vivir ahora que somos salvos. En los capítulos 1 al 8 de Romanos, Pablo nos presenta el profundo misterio de la salvación; en los capítulos 9 al 11, explica el significado histórico de Israel y del “Nuevo Israel”. A través de esta línea argumental, entendemos que en la historia salvífica de Dios hay una “historia principal” y una “historia periférica”, y que la historia principal avanza a través del pueblo que Dios ha escogido. Dentro de este contexto, comprendemos la importancia de lo que significa el “Nuevo Israel” y de cómo podemos renacer como tal en Cristo. El pastor David Jang, basándose en la soteriología y la concepción histórica presentes en Romanos, hace hincapié en la nueva vida que empieza después de recibir la salvación y en cómo vivir como discípulos de Jesucristo.
El “Nuevo Israel” del que habla Pablo puede aplicarse a nuestra propia historia. En el Antiguo Testamento existía el Israel antiguo (“Old Israel”), escogido por Dios. Con la llegada de la era del Nuevo Testamento, surge el Nuevo Israel, que incluye a los gentiles que confiesan a Jesucristo como Señor. Pablo explica en Romanos 9-11 cómo se forma este Nuevo Israel y cómo se expande la historia de la salvación de Dios. El Antiguo Israel, que siguió desobedeciendo, es como las ramas que fueron cortadas, y los gentiles son injertados en ese lugar vacío, proceso que al mismo tiempo define el origen de la Iglesia. Así, quienes hoy creemos en Jesús somos parte del “Nuevo Israel” y hemos sido llamados a ser esa “minoría creativa (creative minority)” que juega un papel central en la historia que Dios dirige. Este punto es fundamental.
Para entender más concretamente este concepto, vale la pena revisar la historia de “los hijos de Dios y las hijas de los hombres” que aparece en Génesis 6. Allí, los hijos de Dios representan a los que Dios escogió y apartó para sí. Sin embargo, estos se casaron con las hijas de los hombres y se mezclaron con el mundo, con el resultado de que llegó el juicio de los días de Noé. Jesús dijo: “Como fue en los días de Noé, así también será en los días del Hijo del Hombre” (Lc 17:26). Esto es una advertencia de que, si aquellos que han sido escogidos por Dios siguen los caminos del mundo y pecan, vendrá el juicio. El pastor David Jang insiste frecuentemente en este punto a lo largo de sus sermones: no debemos vivir en unión con el mundo, sino como quienes hemos sido apartados para vivir santos en Cristo. No hemos de amoldarnos a los patrones de este mundo, sino ser transformados mediante la renovación de nuestra mente (Ro 12:2) para discernir la voluntad perfecta y agradable de Dios.
En Romanos 8, Pablo declara que “la creación aguarda con gran anhelo la manifestación de los hijos de Dios”. La razón es que, cuando se revelan los hijos de Dios y se levanta el Nuevo Israel, el reino de Dios llega a esta tierra. El pastor David Jang conecta esta verdad con la misión escatológica que la Iglesia debe cumplir. Después de ser salvos, debemos entender el fin de los tiempos, no solo desde el punto de vista de predecir señales y temerlas, sino reconociendo que hemos sido llamados para “hacer realidad el reino de Dios” en esta tierra. Las imágenes de “lavar las vestiduras” que aparecen en Génesis 9 y 49, así como en Apocalipsis 22, representan la necesidad de “mantener una conducta pura”. Aunque hemos sido perdonados por el sacrificio de Jesús en la cruz, debemos “lavar continuamente esas vestiduras” en nuestra vida diaria. Es decir, renunciar a los hábitos pecaminosos y vivir una vida consagrada es la señal distintiva de quien pertenece al Nuevo Israel.
La estructura de la carta a los Romanos es notablemente lógica: Pablo primero aborda la soteriología (capítulos 1-8), luego la historia (capítulos 9-11), y después, en el capítulo 12, expone la aplicación práctica o “práctica cristiana”. Aquellos que han recibido la salvación y que forman parte del Nuevo Israel dentro de la historia de Dios deben plantearse: “¿Ahora, cómo he de vivir?” La respuesta es que nuestra vida entera debe ser un “culto espiritual”. Es decir, la vida del creyente es en sí misma culto, y ese culto no se limita al ámbito formal de la iglesia, sino que se extiende a todos los escenarios cotidianos. Es por esto que el pastor David Jang ha reiterado en múltiples oportunidades que “toda nuestra vida debe ser adoración”.
Pablo nos dice: “Presenten sus cuerpos como sacrificio vivo, santo y agradable a Dios” (Ro 12:1). Esto significa consagrar toda nuestra vida a Dios. Implica renunciar a un estilo de vida egocéntrico para servir y sacrificarte por el prójimo. La mayoría de la gente en el mundo antepone lo propio, pero quienes han sido llamados como discípulos de Jesús eligen en primer lugar el camino de la entrega a los demás. Este es el sendero que recorre el Nuevo Israel y la característica de aquellos que, como una minoría creativa, asumen en la historia el papel de eje central.
Además, Pablo hace hincapié: “No os amoldéis a este mundo, sino transformaos por medio de la renovación de vuestra mente, para que verifiquéis cuál sea la buena voluntad de Dios, agradable y perfecta” (Ro 12:2). Este “mundo” se refiere a los valores y a la corriente de la sociedad, que se basan en la ambición de tener más y en el egoísmo de evaluar todo según la conveniencia propia. El cristiano no debe dejarse arrastrar por estos valores mundanos, sino que debe renovar su mente cada día. La mente renovada es aquella que asume el sentir de Jesucristo y obedece la voluntad de Dios, según lo enseña la Biblia.
El pastor David Jang subraya constantemente la importancia de tener tanto una “visión histórica” como un “llamado escatológico”. No basta con centrarnos en la salvación individual: es igualmente crucial comprender cómo los salvos se congregan y forman la comunidad de la Iglesia, qué influencia debe ejercer esta en el mundo y, de manera más amplia, qué responsabilidad tiene en el fluir de la historia de la salvación. La enseñanza de Pablo sobre Israel y el Nuevo Israel invita al cristiano de hoy a reflexionar acerca del “propósito del llamamiento divino”: haber sido escogidos por Dios no es motivo de orgullo o privilegio, sino más bien una llamada a descender a los lugares más humildes para servir y sacrificarte por los demás.
La historia de Jacob en el Génesis es muy elocuente al respecto. Vemos cómo Jacob se reconcilia con su hermano Esaú inclinándose siete veces ante él. Jesús da un paso más y dice: “Hasta setenta veces siete” (Mt 18:22). Este mandato nos revela que la reconciliación y el perdón son la respuesta última, no solo en la comunidad de la Iglesia, sino también en los conflictos entre individuos e, incluso, a nivel social y nacional. El pastor David Jang resalta la importancia de “derribar los muros de enemistad”, señalando a la cruz como la llave que abre ese camino. En Efesios 2:16, Pablo explica que Dios, “mediante la cruz, dio muerte a la enemistad”. Así, la cruz representa el lugar donde se concretan el perdón y la reconciliación de Dios. La Iglesia, tomando el espíritu de la cruz, ha de oponerse a la tendencia mundana de crear murallas y convertir a los demás en enemigos, para en cambio construir la “koinonía”.
El término griego “koinonía” significa “comunión” o “compañerismo”; sin embargo, no se refiere a un mero vínculo de amistad, sino a una comunión espiritual que derriba las barreras por el poder de la cruz. Pablo dedicó gran esfuerzo al “kerygma”, la proclamación de la Palabra que comunica el evangelio de la salvación, y después exhortó a los receptores de este mensaje a vivir en koinonía, la comunión. Si hemos entendido la soteriología y la historia de la salvación, el siguiente paso es eliminar las barreras que nos separan y establecer una verdadera comunión en la Iglesia. Cuando el amor fraterno se hace realidad en esa comunión, mostramos al mundo una evidencia tangible y diferente: la prueba del Nuevo Israel.
No obstante, la koinonía no es la meta final. Una vez lograda, debemos avanzar hacia la “diakonía” (diakonia). “Diakonia” significa “servicio” o “ministerio de ayuda”. En Romanos 12:13, Pablo dice: “Compartid con los santos en sus necesidades; practicad la hospitalidad”. Esto describe de manera concreta la diakonía. Si de verdad amamos a alguien, ese amor debe expresarse en cubrir sus necesidades. El apóstol Santiago señala lo mismo cuando dice: “Si uno de vosotros dice: ‘Id en paz, calentáos y saciaos’, pero no les da lo necesario para su cuerpo, ¿de qué sirve?” (Stg 2:16). El amor no es solo de palabra, sino que se demuestra con hechos.
Romanos 12:1-13 contiene, pues, la enseñanza central de lo que significa un “culto práctico” o “adoración vivida”. Pablo dice: “No os conforméis a este mundo, sino transformaos… para que comprobéis la voluntad de Dios”, y afirma que en Cristo formamos un solo cuerpo, siendo miembros los unos de los otros. Concluye diciendo: “Compartid con los santos en sus necesidades”. El pastor David Jang interpreta este mandato en un sentido muy concreto: si alguien necesita algo, debemos darle lo que requiere, incluso en abundancia. Por ejemplo, si en el campo misionero se necesita un ordenador portátil, no basta con enviar “solo uno”; en la medida de lo posible, debemos enviar más. Esa es la “regla de oro” que Jesucristo propuso: “A cualquiera que te obligue a llevar carga por una milla, ve con él dos” (Mt 5:41), y “Al que te pida, dale; y al que quiera tomar de ti prestado, no se lo rehúses” (Mt 5:42). Es la actitud de llevar a la práctica las enseñanzas de Jesús. Como “Nuevo Israel”, la Iglesia tiene la obligación de proveer las necesidades de los santos, actuar como un solo cuerpo y llevar el amor y el evangelio a todos los rincones del mundo.
El punto esencial que Pablo desea transmitir en Romanos 12 es que, si hemos sido salvos y conocemos la historia de Dios, debemos demostrar nuestra fe “en una vida práctica”. La salvación no es una mera teoría doctrinal; conlleva una transformación de la vida. Cuando vivimos el amor de Cristo, caminamos en sentido contrario a la corriente del mundo, practicamos el amor y el respeto mutuos, y acabamos compartiendo lo que es nuestro en una existencia de sacrificio, estamos ofreciendo ese “culto espiritual”. El pastor David Jang destaca estos principios tanto dentro como fuera de la iglesia, enfatizando que el culto dominical en el templo no es suficiente, sino que la verdadera adoración se hace visible en nuestro estilo de vida y en el servicio a los demás. La Iglesia debe fundar misiones en diversos países y, mediante la cooperación mutua y la provisión generosa de lo que es necesario, expandir el reino de Dios. Tal como en Ezequiel 37, no basta con fortalecer la “estructura ósea” espiritual, sino que debemos revestirla de tendones y carne (amor y servicio concretos) para que la comunidad eclesial se levante como un gran ejército. Si Dios ya nos ha dado la estructura fundamental por su gracia, ahora debemos añadirle los músculos y la carne de la diakonía, cumpliendo así el mandato de “suplir las necesidades de los santos” de Romanos 12.
En última instancia, la raíz de esta enseñanza se halla en el amor que Cristo nos mostró personalmente. El Señor dijo a Simón, hijo de Juan: “¿Me amas?… Apacienta mis ovejas” (Jn 21:15-17). Si afirmamos amar al Señor, hemos de demostrarlo alimentando a sus ovejas. Dentro de la iglesia y de la comunidad, así como en el campo misionero y en el vecindario, podemos expresar ese amor proveyendo lo que las personas necesitan. Este es el camino al que estamos llamados como Nuevo Israel y la esencia tanto del mensaje de Romanos 12 como de la enseñanza práctica del pastor David Jang.
2. La diakonía del creyente y la adoración práctica
Para vivir como Nuevo Israel, debemos poner en práctica la diakonía y la adoración que se evidencia en los hechos. Pablo, en Romanos 12, nos exhorta con instrucciones muy concretas acerca de cómo ofrecer adoración a Dios en la vida diaria. El pastor David Jang señala que este capítulo concluye la enseñanza que Pablo expuso sobre la doctrina de la salvación (Romanos 1-8) y la historia de Israel y el Nuevo Israel (Romanos 9-11). Pues de nada sirve poseer gran conocimiento doctrinal o entender la historia a fondo, si no vivimos el amor en la práctica.
En Romanos 12:1, Pablo declara: “Por lo tanto, hermanos, os ruego por las misericordias de Dios, que presentéis vuestros cuerpos como sacrificio vivo, santo y agradable a Dios; este es vuestro culto racional”. La conjunción “por lo tanto” indica que, después de toda la explicación previa acerca de la salvación y de la historia de Dios, llegamos ahora a la conclusión. ¿Cómo debe vivir el que ha sido salvo? La respuesta es entregar nuestro ser como sacrificio vivo a Dios. En la antigüedad, se ofrecían animales como sacrificio, pero ahora, gracias a la cruz de Jesucristo, quienes hemos sido salvos debemos ser nosotros mismos esa ofrenda. Se trata de un sacrificio vivo y constante, que se convierte en el “culto espiritual”.
Para que nuestra vida sea adoración, primero debemos “no amoldarnos a la forma de este mundo, sino transformarnos mediante la renovación de nuestra mente” (Ro 12:2). El mundo gira en torno al egoísmo y la complacencia personal, mientras que el hijo de Dios se centra en el sacrificio y el amor al prójimo. Por ello, Pablo señala cómo deben usarse los distintos dones que cada uno ha recibido, y cómo debemos servirnos unos a otros como miembros de un mismo cuerpo (Ro 12:3-8). Esta instrucción culmina en la frase: “compartid con los santos en sus necesidades; practicad la hospitalidad” (Ro 12:13). El significado de “compartid con los santos” no se limita únicamente al aspecto económico, sino que implica también consolación espiritual, empatía y cuidado, según lo requiera la situación.
El pastor David Jang interpreta Romanos 12:13 como la esencia de la “diakonía”, calificándola como una de las tareas más importantes de la Iglesia. La Iglesia proclama el evangelio (kerygma), y quienes reciben ese mensaje forman comunión (koinonía). Pero eso no basta; el amor de Cristo debe desbordar en servicio y ayuda concreta. Esta es la diakonía. Cuando esta se practica de manera abundante, el cuerpo de Cristo, la Iglesia, cobra vida, tal como en Ezequiel 37 los huesos secos cobran cuerpo, se cubren de músculo y piel, y se constituyen en un gran ejército.
¿Cómo podemos compartir concretamente “lo que necesitan los santos”? El pastor David Jang propone varios ejemplos. Por ejemplo, si un misionero en el extranjero necesita un ordenador, un vehículo o material médico, el auténtico amor se demuestra al proveerle tales recursos sin escatimar. Este es el espíritu de Mateo 5:41-42, donde Jesús instruye: “Y a cualquiera que te obligue a llevar carga por una milla, ve con él dos; al que te pida, dale; y al que quiera tomar de ti prestado, no se lo rehúses”. Es una actitud que da más de lo que se pide, siguiendo el ejemplo de Jesús. Este amor no se limita a palabras de afecto, sino que se concreta en acciones que suplen necesidades reales.
Además, esta práctica no se queda en la ayuda individual o local. Puede extenderse a un proyecto de colaboración global para la misión mundial. El pastor David Jang habla de la noción de “G20”, aludiendo a la importancia de que iglesias en diversos países colaboren mutuamente, se ayuden unas a otras y así funden nuevas iglesias en otros lugares. Puede haber áreas misioneras con recursos financieros suficientes pero carentes de recursos espirituales, o al contrario, zonas donde haya abundancia de personas dispuestas a servir, pero pocos fondos. Si la Iglesia actúa como un solo cuerpo y suple estas necesidades, el evangelio podrá esparcirse con poder en muchos lugares del mundo. Esto es la diakonía en su dimensión más amplia, “compartir las necesidades de los santos” a escala global.
En Romanos 12:9 y siguientes se dice: “El amor sea sin hipocresía, aborreciendo lo malo y adhiriéndoos a lo bueno. Amaos los unos a los otros con amor fraternal; en cuanto a honra, prefiriéndoos los unos a los otros. En lo que requiere diligencia, no perezosos; fervientes en espíritu sirviendo al Señor; gozosos en la esperanza, sufridos en la tribulación, constantes en la oración; compartid con los santos en sus necesidades, practicad la hospitalidad”. Todas estas exhortaciones tienen un carácter eminentemente práctico. Pablo nos dice que amemos sin hipocresía, nos apeguemos a lo bueno, honremos a los demás, seamos diligentes y fervientes. Nos anima a gozarnos en la esperanza, ser pacientes en la aflicción, orar sin cesar y, finalmente, a suplir las necesidades de los creyentes. Esto implica responder a las peticiones de ayuda y, aún más, explorar qué otras cosas el prójimo pudiera necesitar, aunque no las pida.
Cuando la comunidad cristiana practica la diakonía de esta manera, el mundo es testigo de la presencia de Cristo. Al igual que en la Iglesia primitiva, cuando los no creyentes exclamaban: “¡Mirad cuánto se aman!”, hoy, en un mundo donde el amor y la entrega son cada vez más raros, el simple hecho de que la Iglesia obedezca las enseñanzas de Romanos 12 puede producir un gran impacto. Este es el verdadero papel de la Iglesia como luz y sal de la tierra, y, a su vez, la vía más eficaz de anunciar el evangelio.
Sin embargo, este tipo de práctica no resulta sencilla, porque la naturaleza humana es egocéntrica y vulnerable a los influjos del mundo. Por eso Pablo insiste en que “no os amoldéis a este mundo”. Además, para que la diakonía sea posible, es fundamental que la Iglesia, en su interior, “derribe los muros” que haya. En la carta a los Efesios, Pablo explica que la cruz es la que destruye la enemistad. Esto implica que todas las tensiones, prejuicios, discriminaciones y malos entendidos que surgen en la Iglesia deben someterse al espíritu de la cruz. Solo así se alcanza la verdadera koinonía, y después de ello se puede llevar a cabo la diakonía.
El pastor David Jang dice en sus sermones que, cuando leemos la Biblia, debe haber algo que nos confronte y, en cierto modo, nos produzca temor. Por ejemplo, en el pasaje de Génesis 33:3, Jacob se inclina siete veces ante su hermano Esaú para reconciliarse. Eso nos hace preguntarnos: “¿Podría yo mostrar un gesto tan puro de reconciliación?” De igual manera, cuando Jesús nos insta a perdonar “hasta setenta veces siete” (Mt 18:22), sentimos un escalofrío que supera nuestra limitación humana. Pero ese temor no pretende llevarnos a la desesperación; más bien, gracias al auxilio del Espíritu Santo, nos impulsa a acercarnos un poco más a ese amor. Si la Iglesia practicara el perdón y la reconciliación “setenta veces siete”, el mundo vería en ella un nivel de amor inusual.
Esta es la esencia de “la vida del Nuevo Israel”. Si el antiguo Israel cayó por no guardar la Ley, nosotros, como Nuevo Israel, debemos poner nuestros ojos en la cruz de Cristo, arrepintiéndonos a diario y humillándonos para servir a los santos. Pablo repite este llamado al amor y al servicio incondicional en Romanos 12 y en otras epístolas, como 1 Corintios, Efesios y Gálatas. El rasgo que diferencia a la Iglesia del mundo es esta “práctica del amor”, la cual culmina en la diakonía.
Además, la diakonía está íntimamente ligada a la proclamación del evangelio. No basta con el mero acto de solidaridad humana; debemos hacerlo en el nombre de Jesucristo. El apóstol Pablo, en su ministerio, cuidaba de las iglesias, recogía ofrendas para la Iglesia de Jerusalén y fomentaba la unidad entre la iglesia judía y la gentiles. Todo esto ejemplifica la diakonía. Nuestra meta es que nuestra ayuda no solo parezca un gesto de caridad humana, sino que el beneficiario sepa reconocer en ella “el amor de Jesucristo”.
La diakonía como “adoración práctica” o “culto espiritual” debe comenzar dentro de la propia Iglesia. Primero hemos de aprender a satisfacer las necesidades de nuestros hermanos más cercanos, y solo entonces dicha práctica fluirá al exterior, transformándose en servicio social y en un compartir más amplio. El pastor David Jang enfatiza que, si la Iglesia no atiende a las necesidades internas de sus fieles, cualquier acción misionera o evento que se organice a nivel externo carecerá de autenticidad. “Compartir con los santos sus necesidades” implica también examinar con atención las situaciones de los hermanos que tenemos cerca y suplirlas. Cuando el amor abunda dentro de la congregación, este se expande de manera natural hacia fuera, llegando a ser luz verdadera para el mundo.
La exhortación de Romanos 12 a “compartir con los santos en sus necesidades y practicar la hospitalidad” es el núcleo que la Iglesia de hoy necesita recuperar y, a la vez, el criterio para evaluar la “verdadera adoración” de cada creyente. No se trata de limitarse a una hora de culto en el templo, sino de llevar la gracia y la Palabra a la vida real, de compartir con el prójimo cercano, con los misioneros, con hermanos de otras naciones aquello que de verdad necesitan. Pablo afirmó que la “vida es adoración”, y esta se concreta cuando ejercemos la diakonía. El pastor David Jang recalca que “ofrecerse en sacrificio vivo, santo y agradable a Dios” (Ro 12:1) se materializa en una entrega real en la cotidianidad. No basta con cantar y escuchar buenos sermones para completar la adoración. Solo cuando luego de ello “procuramos con todas nuestras fuerzas suplir las necesidades de los santos” y servir a la comunidad, se convierte en ese “culto espiritual” que Dios recibe con agrado.
El mensaje de Romanos 12:1-13 sobre “la nueva vida en Cristo” desemboca, por ende, en la diakonía: presentar nuestro cuerpo como sacrificio vivo, no conformarnos a la corriente del mundo, respetar los diversos dones dentro de la Iglesia, derribar los muros con el poder de la cruz y amar a los hermanos de forma tangible. En ese proceso, la Iglesia crece y el mundo contempla el amor de Cristo a través de ella. Y todo esto se halla inscrito en la gran “historia de la salvación” de Dios. Según lo ha reiterado el pastor David Jang, la historia de la salvación es el plan global de Dios que rescata al hombre del pecado y que culmina en la consumación escatológica; en el centro de dicha historia están la cruz y la resurrección de Cristo, la obra del Espíritu Santo y la Iglesia.
Nuestro deber es sencillo: “escuchar la Palabra (kerygma), edificarnos en comunión (koinonía) y practicar el amor mediante el servicio (diakonía)”. Con ello, mostramos nuestra condición de discípulos de Jesús como “Nuevo Israel” y glorificamos a Dios. Romanos 12 actúa como una guía práctica condensada de todo este proceso. Si hemos sido salvados, debemos examinarnos ante esta Palabra y preguntarnos: “¿De verdad ofrezco mi vida como adoración? ¿Estoy realmente compartiendo las necesidades de los hermanos y esforzándome por hospedar y servir?” Las enseñanzas del pastor David Jang nos reavivan este interrogante y nos llaman a la acción.
Por lo tanto, tanto de forma individual como colectiva, hemos de grabar esta enseñanza en el corazón y llevarla a la práctica. Si alguien pide ayuda, antes de preguntarme “¿cuánto puedo dar?”, he de cuestionarme “¿existe alguna posibilidad de dar aún más?”. Ese es el amor que mostró Jesús y la genuina adoración a la que Romanos 12 nos llama. Cuando una comunidad practica esta forma de culto, es imposible que el mundo no la reconozca como auténticos discípulos de Cristo. Este es el camino que debemos transitar tras ser salvados, la misión del Nuevo Israel y la conclusión práctica del evangelio que el pastor David Jang ha venido proclamando incesantemente.
로마서 12장 1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구원받은 존재로서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내용이다. 바울은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 구원의 심오한 비밀을 가르쳤고, 9장부터 11장까지는 이스라엘과 새 이스라엘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했다. 이 흐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사 안에 중심사(主流史)와 주변사(周邊史)가 있으며,중심사는 곧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을 통해 역사가 이끌려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 이스라엘(New Israel)’이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이스라엘로 거듭날 수 있는가 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로마서의 구원론과 역사론을 토대로, 곧 구원받은 후에 시작되는 새로운 삶,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강조한다.
바울이 말하는 새 이스라엘은 우리의 이야기로 적용될 수 있다. 구약에서 선택받은 옛 이스라엘(Old Israel)이 존재했고, 신약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이방인들을 포함한 새 이스라엘이 생겨났다. 바울은 로마서 9장부터 11장까지, ‘새 이스라엘’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하나님의 구원사가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설명한다. 옛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불순종함으로 인해 깎여 나간 가지와도 같고, 이방인들이 그 빈자리에 접붙임 받는 과정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곧 교회의 기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늘날 예수를 믿는 우리는 ‘새 이스라엘’에 속한 자들로,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중심사를 형성하는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개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거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곧 하나님이 선택해 구별해놓으신 자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며 세상에 섞여버렸고, 그 결과 노아의 심판 사건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눅 17:26)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 세상에 물들어 죄의 길로 간다면 그 심판이 임할 수 있음을 경고하신 것이다. 장재형 목사가 여러 설교에서 강조하는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세상과 짝하여 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12: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자녀가 드러나고, 새 이스라엘이 일어설 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때문이다. 장재형(장다윗) 목사는 이를 교회가 감당해야 할 종말론적 사명으로 연결해 설명한다. 구원받은 후에는 반드시 종말론을 깨달아야 하는데, 이는 단지 종말의 징조를 예언하고 두려워하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도록 부르심받았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창세기 9장과 49장, 그리고 요한계시록 22장에 나타난 ‘두루마기를 빠는’ 이미지는 ‘행실을 깨끗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았다면, 우리의 일상에서도 계속 그 옷을 깨끗이 빨아야 함을 뜻한다. 세상적인 죄의 습관을 버리고, 성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새 이스라엘의 표지다.
바울이 구원론(롬 1-8장), 역사론(롬 9-11장)을 설명하고 이어서 로마서 12장에서 ‘실천론’을 말하는 흐름은 매우 논리적이다. 구원을 받은 자,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새 이스라엘이 된 자라면,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바로 삶 전체가 ‘영적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자의 삶이 곧 예배이며, 이 예배는 교회에서 드리는 형식적 예배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현장으로 확대된다. 장재형 목사가 여러 예배와 설교에서 “삶 자체가 예배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이 점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고 한다. 이것은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헌신을 뜻한다. 더 이상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지 않고, 이웃을 위해 희생하며 봉사하는 삶을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대개 ‘자기 것’을 우선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받은 우리는 먼저 남을 위해 희생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새 이스라엘이 걷는 길이며, 역사에서 중심사로서 창조적 소수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들의 특징이다.
이와 더불어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롬 12:2)고 강조한다. 이 세대란 곧 세상의 가치관과 풍조를 의미한다. 세상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과 ‘서로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이기심’이 지배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살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고, 그 마음이 곧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역사를 읽는 눈’과 ‘종말론적 소명’을 함께 가지라고 거듭 강조한다. 우리가 단순히 개인 구원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이 어떻게 모여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그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구원사 전체의 흐름 속에서 어떤 사명을 감당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새 이스라엘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택하심의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결코 자기 자랑이나 특권의식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택하심을 통해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 봉사하고 희생해야 함을 가리킨다.
특히 창세기에서 야곱의 이야기는 매우 시사적이다. 야곱이 에서와 어떻게 화해했는지를 보면, 그는 에서에게 일곱 번이나 절을 함으로써 형과 화목했다. 예수님은 이보다 더 나아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마 18:22)고 하셨다. 이 말씀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뿐 아니라, 개인과 개인, 나아가 사회와 민족 간의 갈등에서도 궁극적인 해답은 ‘화해와 용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막힌 담을 허무는 정신’을 늘 강조하며, 십자가의 정신이 그 벽을 허무는 열쇠임을 가르친다. 에베소서 2장 16절에서 바울은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말했는데, 곧 십자가는 하나님의 용서와 화해가 구현된 곳이다. 교회는 바로 이 십자가의 정신을 이어받아, 서로를 원수로 만들고 벽을 쌓는 세상 풍조에 맞서 ‘코이노니아(koinonia)’를 실현해야 한다.
‘코이노니아’는 그리스어로 ‘교제’ 혹은 ‘사귐’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단순한 친목이 아니라 십자가로 막힌 담을 허무는 영적 교제를 뜻한다. 바울은 ‘캐리그마(kerygma)’, 즉 말씀의 선포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데 힘썼고, 이어서 이 말씀을 받은 자들이 함께 교제를 이루는 ‘코이노니아’를 강조했다. 우리가 구원론과 역사론을 깨달았다면, 그다음에는 교회 안에서 서로 막힌 담을 헐어버리고 참된 교제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제 속에서 형제적 사랑이 실현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 사람들과 다른 모습, 곧 새 이스라엘의 증거를 나타내게 된다.
그러나 코이노니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졌다면, 그다음 단계인 ‘디아코니아(diakonia)’로 나아가야 한다. ‘디아코니아’는 ‘봉사’ 혹은 ‘섬김’을 의미한다. 로마서 12장 13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말한다. 이것이 디아코니아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사랑한다면, 실제로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야고보 사도도 “네가 ‘평안히 가라, 따뜻하게 지내라, 배부르게 되라’고 말만 하고,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약 2:16)고 지적했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로마서 12장 1-13절은 우리의 ‘실천적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한 핵심 가르침을 담고 있다. 바울은 “너희는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라”고 말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것을 우리식 표현으로 풀어내며, 실제로 필요한 사람에게는 더 많이 베풀라고 권면한다. 만약 선교지에서 노트북이 필요하다고 하면, ‘하나만’ 주는 데 그치지 말고, 가능한 한 더 보내 주라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주라”는 황금률(마 5:41)이며,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42)는 말씀을 실제로 실행하는 자세라는 것이다. 교회는 ‘새 이스라엘’로서, 서로의 쓸 것을 공급하고, 한 몸이 되어 세계 곳곳에 복음과 사랑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이 핵심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구원받은 자,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자라면, 이제 그 믿음을 ‘실천적인 삶’으로 증명하라는 것이다. 구원은 단순한 교리적 지식이 아니라, 삶의 변화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고, 세상 풍조와 반대되는 길을 가며,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궁극적으로 자기 것을 나누어 주는 희생의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곧 ‘영적 예배’가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런 원리를 교회 안팎에서 강조하며,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섬김이 진정한 예배라고 역설한다. 교회는 여러 나라의 선교지를 세워나가고, 서로 도우며, 필요한 것들을 아낌없이 공급하는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뤄가야 한다. 영적 골조(뼈대)가 든든해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힘줄과 살(실질적인 사랑과 봉사)이 함께 붙어야 교회 공동체가 큰 군대처럼 일어선다는 에스겔 37장의 비전도 우리의 실천을 촉구한다. 이미 하나님께서 은혜로 뼈대를 세워주셨다면, 이제는 그것에 힘줄과 살을 더해 생기 넘치는 교회를 세워야 한다. 그것이 곧 디아코니아 정신이며, 로마서 12장이 가르치는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라’는 구체적인 명령이다.
이 모든 가르침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몸소 보여주신 사랑이다. 주님께서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명하셨다(요 21:15-17).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의 양을 먹이는 것으로 증명해야 한다.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선교지와 이웃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을 공급함으로써 그 사랑을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이 새 이스라엘로 부름받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며, 로마서 12장의 메시지와 장재형 목사의 실제적 가르침이 가리키는 핵심이다.
2. 성도의 디아코니아와 실천적 예배
새 이스라엘로 살아가려면, 반드시 디아코니아와 실천적 예배가 따라와야 한다.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권면들은, 그리스도인이 일상에서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방법을 알려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이, 구원의 교리(롬 1-8장)와 이스라엘·새 이스라엘의 역사론(롬 9-11장)을 완성하는 실천론이라고 말한다. 교리를 아무리 많이 알고, 역사를 꿰뚫어 본다 해도, 삶에서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 모든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선언한다.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앞에서 말한 구원과 역사에 대한 모든 설명이 이제 결론으로 이어짐을 시사한다. 구원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대답이 곧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이다. 예전에는 동물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가 우리 삶을 통째로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살아 있는 상태로 계속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므로, ‘영적 예배’가 된다.
삶이 예배가 되려면, 우선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고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롬 12:2). 세상은 자기 만족과 이기심에 초점을 맞추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자기 희생과 이웃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바울은 은사를 받은 자들이 그 은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서로 지체가 되어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롬 12:3-8)를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그 모든 가르침의 결론이“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는 말씀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한다’는 말은, 단지 물질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재정을 지원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때로는 영적 위로, 공감, 돌봄 등 다양한 형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 로마서 12장 13절을 ‘디아코니아’의 본질로 해석하면서, 교회가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고 강조한다. 교회는 말씀을 선포하여 캐리그마를 전하고, 그 말씀 안에서 교제를 이루어 코이노니아의 기쁨을 누린다. 그런데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흘러, 실제로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는 봉사와 섬김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디아코니아다. 이 디아코니아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때, 교회 공동체는 뼈가 살아나고 힘줄과 살이 붙어 큰 군대가 된다는 에스겔 37장의 비전을 실현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체적으로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할 수 있을까? 장재형 목사는 여러 예를 들어 설명한다. 가까운 예로, 해외 선교지에서 노트북이나 차량, 혹은 의료용품 등 필요한 물품을 요청한다면, 그것을 아낌없이 보내주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다. 이는 마태복음 5장 41-42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주며,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는 황금률을 따르는 것이다. 상대가 한 가지를 요청하면, 오히려 두 가지를 주며 섬기는 태도가 예수님의 제자의 자세라는 것이다. 이 사랑의 실천은 말로만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더 나아가 이것은 교회가 개인적으로, 지역적으로 할 수 있는 봉사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네트워크를 이루며 협력해야 하는 ‘세계 선교의 비전’으로 확장된다. 장재형 목사는 G20이라는 개념을 활용해, 이 땅의 여러 나라에 세워지는 교회들이 협력하여 서로를 돕고, 또 다른 나라의 교회를 세워가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어떤 선교지는 물질이 풍부한 반면, 영적 자원이 부족할 수 있고, 또 다른 선교지는 인적 자원은 풍부하지만, 재정이 취약할 수 있다. 교회가 한 몸이 되어 이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줌으로써, 세계 도처에 하나님의 복음이 힘 있게 전파될 수 있다. 이것이 실질적인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는’ 디아코니아의 확장된 모습이다.
로마서 12장 9절 이하에서는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말한다. 이 권면들은 모두 실천적 차원을 다룬다. 사랑하라고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한다. 형제를 존경하고, 부지런히 주를 섬기며, 소망을 품고 환난을 참아내고, 기도를 끊임없이 하며, 결국 구체적인 도움을 주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 그 요구를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더 나아가 ‘그가 말하지 않은 필요’까지도 살펴보며 주는 태도가 참된 사랑이다.
교회 공동체가 이렇게 디아코니아를 실천할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초대교회 시절, 믿지 않는 이들이 교회를 보며 “보라, 저들이 서로 사랑함이 얼마나 큰가” 하고 놀랐던 것처럼,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도 참된 사랑과 봉사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이때에, 교회가 로마서 12장의 말씀을 따라 실제적으로 섬긴다면 큰 감동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곧 교회가 감당해야 할 빛과 소금의 역할이며, 복음 전파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다.
그러나 이런 실천이 쉽지는 않다. 인간은 본성상 자기중심적이고, 여전히 세상 풍조에 물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간곡히 권면한다. 또한 디아코니아가 이루어지려면, 교회 안에서도 ‘벽을 허무는’ 작업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십자가가 원수 된 것을 허무는 능력이라 했는데, 이는 곧 교회 안에 발생하는 갈등이나 편견, 차별, 그리고 서로를 향한 오해들을 십자가 정신으로 녹여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고, 그다음에야 디아코니아가 가능한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여러 설교에서,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기 위해 일곱 번이나 절을 하는 장면(창 33:3)을 읽을 때, 우리는 “나는 저런 순전한 화해의 몸짓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이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을 때(마 18:22),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용서를 요구하시는 주님의 명령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은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사랑의 수준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하려는 동기가 된다. 결국 교회가 서로에게 일곱 번 일흔 번이라도 용서와 화해를 실천한다면, 세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의 사랑이 교회 안에 실현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 이스라엘’의 삶이다. 옛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지 못해 넘어졌다면, 새 이스라엘로 부름받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날마다 회개하고 자신을 낮추어 성도를 섬겨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전후로,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 갈라디아서 등 여러 서신에서 끊임없이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이 ‘사랑의 실천’이고, 그것이 결국 디아코니아의 완성이다.
나아가, 이러한 디아코니아는 복음 선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단순히 구제하고 봉사하는 행위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봉사를 해야 한다. 바울 역시 선교 사역 속에서 교회들을 돌보며,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모으고, 이방 교회와 유대인 교회가 하나가 되도록 섬겼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디아코니아의 전형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봉사가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온정’으로 비춰지는 것을 넘어, ‘아,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구나’ 하고 체감할 수 있도록 복음적 메시지가 깔려 있어야 한다.
실천적 예배로서의 디아코니아는 교회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먼저 믿는 자들끼리 서로의 필요를 살피고 채워 주는 일을 배울 때, 그것이 교회 밖으로 흘러나가 사회적인 봉사와 나눔으로 확장될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내적으로 성도를 돌보지 않으면, 외적으로 아무리 화려한 선교와 이벤트를 펼쳐도 그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한다’는 말 속에는, 가장 가까운 형제자매들의 상황부터 세심히 살피고 도우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내부에서부터 사랑이 넘쳐날 때, 밖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 진정한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
로마서 12장의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말씀이,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핵심이며, 동시에 개인 신앙인이 확인해야 할 ‘진짜 예배’의 모습이다. 한 시간의 예배당 예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예배로부터 공급받은 은혜와 말씀을 가지고 실생활에서, 곁에 있는 이웃과 선교지, 여러 나라의 형제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바울이 말한 “삶이 곧 예배”라는 명제는, 결국 이 디아코니아가 실행될 때 완성된다.
장재형 목사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주님의 양을 먹이라 하신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먹인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필요한 말씀을 공급하고, 물질적으로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며, 심적으로 곤고한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교회 공동체는 이런 ‘양을 먹이는 사역’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각자 받은 은사를 활용하여 봉사에 참여해야 한다. 누군가는 가르치는 일을 잘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위로하고 사람을 돌보는 일을 잘할 것이다. 또 재정적으로 풍족한 사람은 물질을 나눌 수 있고, 행정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이런 각양각색의 은사가 모여서 하나의 몸을 이룰 때, 교회는 큰 파급력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디아코니아는 마치 몸 안의 근육과 같아서, 뼈대만 든든한 상태로는 기능할 수 없는 인체가, 근육을 통해 움직이고 힘을 발휘하듯, 교회 공동체도 디아코니아를 통해 실질적인 활동력을 얻는다. 에스겔 37장이 말하는 ‘큰 군대’는 바로 이런 모습을 뜻한다.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일어나기 위해선 생기, 즉 성령의 역사도 필요하고, 그 뼈를 이어주는 힘줄과 살이 있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골조를 가지고 있다면, 이제 거기에 봉사와 사랑이라는 근육과 살을 덧붙여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교회는 ‘마른 뼈’와 다를 바 없다.
이처럼 로마서 12장의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실천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제자도’를 배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고(요 13:34), 또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였으니, 너희도 그대로 행하라”고 하셨다(요 13:15 참조). 예수님은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 굶주린 무리를 먹이셨으며,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이런 모든 장면이 디아코니아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교회가 이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세상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엿보고, 복음을 접할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디아코니아가 단순한 인도주의적 봉사나 자선 활동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영적 예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구원받은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산 제사인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라”는 바울의 권면(롬 12:1)을 곱씹으면서, 진정한 예배는 결국 자기희생의 현장 속에서 열매를 맺게 된다고 역설한다. 예배당에서 아름다운 찬양을 하고, 좋은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예배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 예배 후에 곧바로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는 일에 전심전력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영적 예배’가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로마서 12장 1-13절이 제시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활’은 자기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고, 세대의 풍조를 거슬러 마음을 새롭게 하며,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은사를 존중하고, 막힌 담을 십자가로 허물고, 형제자매에게 실제적인 사랑을 베푸는 디아코니아로 귀결된다. 그 과정에서 교회는 성장하고, 세상은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목도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구원사’가 흐른다. 장재형 목사가 누차 강조해 온 바, 구원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건지시고 종말론적 완성을 이루시는 전체 역사를 말하며, 그 핵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의 역사와 교회가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말씀을 듣고(캐리그마), 서로 교제하며(코이노니아), 봉사와 섬김으로 사랑을 실천하는(디아코니아)’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새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로마서 12장은 이 모든 과정을 농축한 실천 지침서다. 구원받은 이들이라면, 반드시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진짜 삶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고 있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장재형 목사의 가르침은 이런 물음을 다시금 생생하게 하며, 우리를 구체적 실천으로 재촉한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공동체적으로도, 오늘 들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곧바로 실천에 옮겨야 한다. 누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내게 있는 것으로 얼마나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이전에, 먼저 “더 많이, 더 넉넉하게 줄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이요, 로마서 12장이 말하는 참된 예배다. 그리고 이런 예배를 실제로 드리는 자들이 모인 공동체는, 누구라도 한눈에 보아 “저들은 정말 그리스도의 제자들이구나”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될 것이다. 이것이 곧 구원받은 뒤의 삶, 그리고 새 이스라엘로서의 사명이며, 장재형 목사가 계속해서 외쳐 온 복음의 실천적 결론이기도 하다.
I. Le mystère de la Trinité et la promesse du Consolateur
Le pasteur David Jang, se fondant sur le passage de Jean 14,15-26, traite en profondeur de la promesse du Consolateur (le Saint-Esprit) lors du discours d’adieu de Jésus-Christ. Il souligne à quel point l’économie du salut, opérée par le Dieu trinitaire, est une grâce étonnante. Dans ce passage, Jésus, au moment de son discours d’adieu, déclare : «Si vous m’aimez, vous garderez mes commandements» (Jn 14,15), puis poursuit : «Moi, je prierai le Père, et il vous donnera un autre Consolateur, pour qu’il demeure éternellement avec vous» (Jn 14,16). C’est la promesse que, après le départ du Fils, les disciples ne seraient pas laissés orphelins, mais recevraient le Saint-Esprit. À ce stade, le pasteur David Jang développe l’œuvre de salut du Dieu trinitaire, répétant inlassablement que la foi en un seul Dieu en trois Personnes (Père, Fils, et Saint-Esprit) est le cœur de la doctrine chrétienne et la véritable vérité.
Jésus exhorte ses disciples à ne pas s’inquiéter. Sur quoi s’appuie-t-Il pour dire cela ? Premièrement, parce que le Père, Créateur, est vivant ; deuxièmement, parce que Jésus-Christ est le chemin, la vérité et la vie ; troisièmement, parce qu’Il enverra le Consolateur, le Saint-Esprit. Ainsi, dans la Trinité, les rôles et l’action du Père, du Fils et du Saint-Esprit sont unis. Le chapitre 14 de l’Évangile de Jean présente le Saint-Esprit, appelé Paraclet (du grec paraklêtos), comme «l’Esprit de vérité». Selon le pasteur David Jang, ce même Esprit de vérité est caché aux yeux de ceux qui appartiennent au monde, mais se révèle comme une grâce spéciale à ceux qui aiment Jésus, gardent sa Parole et croient en Lui. Le monde ne peut ni le recevoir ni le connaître, tandis que les croyants font l’expérience du Saint-Esprit au travers de l’œuvre salvatrice de Jésus-Christ.
Dans le passage, Jésus déclare explicitement : «Il demeure avec vous et il sera en vous» (Jn 14,17). Le Saint-Esprit n’est pas limité par l’espace ou le temps. Même après la résurrection et l’ascension du Christ, Il demeure avec tous les croyants du monde entier. Le pasteur David Jang qualifie cet avènement d’«ère grandiose du Saint-Esprit». Le Saint-Esprit, agissant sur l’œuvre rédemptrice accomplie par Jésus, entre dans le cœur des croyants, les console, les protège, leur ouvre les yeux sur la vérité, et leur insuffle force et puissance. L’homme, enchaîné par le péché, peut désormais trouver la liberté et marcher sur la voie d’une vie nouvelle grâce à la rédemption de Jésus-Christ et la venue du Consolateur, le Saint-Esprit.
«Je ne vous laisserai pas orphelins», déclare le Seigneur, parole qui concerne non seulement les disciples de l’époque, mais aussi chacun de nous aujourd’hui. Les disciples ont été témoins directs de la Passion, de la mort, puis de la résurrection de Jésus, mais leur cœur était rempli de crainte à l’idée de voir Jésus partir physiquement. Pourtant, Jésus ne les a pas abandonnés, affirmant au contraire : «Je reviendrai à vous» (Jn 14,18), garantissant la nouvelle ère inaugurée par la descente du Saint-Esprit après sa résurrection. Le pasteur David Jang insiste alors sur la foi absolue de Jésus. Face à la croix et à la mort, Jésus a pu déclarer : «Parce que je vis, vous aussi vous vivrez» (Jn 14,19), montrant qu’Il était pleinement assuré de la réalité de la résurrection. La mort n’était que passagère et la puissance de la mort ne pouvait Le retenir. De ce fait, nous voyons déjà la victoire qu’Il détient en main.
Le pasteur David Jang revient sans cesse sur l’importance de la doctrine de la Trinité. Le Dieu trinitaire ne saurait être compris à travers le monarchianisme ou le modalisme, car le Père, le Fils et le Saint-Esprit sont trois Personnes distinctes et égales en divinité. Si le Fils Jésus-Christ et le Saint-Esprit étaient de simples «créatures» subordonnées au Père, il serait difficile de qualifier l’œuvre de la croix de véritable œuvre de Dieu. Au contraire, Jésus-Christ, vrai Dieu (de même essence que le Père), est venu pour accomplir la rédemption, et le Saint-Esprit, Lui aussi vrai Dieu, nous accompagne sur le chemin du salut.
Certains s’interrogent : pourquoi croire en la Trinité ? Ne suffit-il pas de croire en un seul Dieu ? Le christianisme croit en la Trinité parce que, pour connaître Dieu pleinement, il faut reconnaître l’action conjointe du Père qui nous aime, du Fils Jésus qui manifeste Son amour, et du Saint-Esprit qui nous rappelle toutes les Paroles de Jésus et façonne notre vie nouvelle.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 «Nous connaissons qui est Dieu par Jésus-Christ.» L’homme, être fini, ne peut atteindre à la connaissance du Dieu infini de lui-même. Mais Dieu s’est révélé en Jésus-Christ venu en chair, nous montrant, par la mort et la résurrection de Jésus, l’immensité de Son amour. Et c’est précisément le Saint-Esprit qui, de nos jours, nous applique et nous fait comprendre le chemin de Jésus dans chacune de nos vies. Le Dieu trinitaire est donc un seul Dieu, tout en étant trois Personnes qui conduisent l’homme à la sanctification et à l’accomplissement du salut.
Par la grâce de Jésus-Christ, nous recevons la justification (le fait d’être déclarés justes). Ensuite, «la communion du Saint-Esprit» nous permet de progresser continuellement vers la sainteté. Voilà pourquoi la bénédiction trinitaire suit l’ordre «la grâce du Seigneur Jésus-Christ, l’amour de Dieu et la communion du Saint-Esprit» (2 Co 13,13). Par la grâce de Jésus, nous accédons à l’amour du Père, et le Saint-Esprit, habitant en nous, nous permet de vivre sans cesse dans cet amour. Pour reprendre les termes du pasteur David Jang : «Le salut accompli sur la croix est appliqué, en chaque personne, par le Saint-Esprit. Et ce salut, une fois appliqué, produit en nous des fruits concrets grâce à la direction du Saint-Esprit.»
Si l’époque de l’Ancien Testament a révélé, par la loi et l’alliance divines, l’étendue de notre péché et de nos limites, l’ère du Nouveau Testament a vu l’accomplissement de l’œuvre du Fils, Jésus-Christ, venu pour nous. Après sa mort, sa résurrection et son ascension, s’est ouverte l’ère du Saint-Esprit. Dans Actes 2, au jour de la Pentecôte, l’Esprit descend de manière spectaculaire, donnant corps à la déclaration : «Quiconque invoquera le nom du Seigneur sera sauvé.» Contrairement à l’Ancien Testament, où l’Esprit reposait sur certains prophètes, désormais tous, hommes ou femmes, jeunes ou vieux, serviteurs ou servantes, peuvent recevoir le Saint-Esprit en croyant en Jésus. Le pasteur David Jang y voit l’accomplissement de l’amour universel de Dieu, nous permettant de faire l’expérience de la puissance du Saint-Esprit, «l’Esprit de vérité», et de marcher avec Lui dans une joie authentique.
Dans Jean 14,26, le Seigneur ajoute : «Mais le Consolateur, l’Esprit Saint, que le Père enverra en mon nom, vous enseignera toutes choses et vous rappellera tout ce que je vous ai dit.» L’expression «en mon nom» signifie que le Saint-Esprit est envoyé à la suite de l’œuvre de la croix, de la résurrection et de l’ascension de Jésus. Le don du Saint-Esprit n’est pas accordé sans prix ; la mort substitutive de Jésus devait précéder l’ouverture du salut et de la grâce où s’inscrit la venue de l’Esprit. Le pasteur David Jang le résume ainsi : «Sans la croix, pas de Saint-Esprit.» Autrement dit, c’est sur le fondement de la victoire du Christ sur le péché que nous recevons l’Esprit «au nom de Jésus.»
Au quotidien, le Saint-Esprit illumine la vérité, nous rappelle tous les enseignements de Jésus, et nous fait vivre non pas une simple mémorisation intellectuelle, mais une transformation puissante de notre vie. Quand nous tombons dans le péché ou nous laissons submerger par le désir charnel, le Saint-Esprit nous avertit : «Reviens au chemin du Seigneur, ceci est un péché.» Puis, dans cette démarche de repentance, Il nous protège, nous console, et nous amène à mieux comprendre la justice de Jésus, à élever vers Lui un chant de gratitude. Le pasteur David Jang nomme cela «le chemin de la vraie liberté.» Le monde confond souvent liberté et licence, ou indépendance absolue. En réalité, nous entrons dans la véritable liberté lorsque, par l’expiation de Jésus-Christ, nous recevons le pardon, puis vivons dans l’Esprit. Là seulement nous sommes libérés de nos chaînes et vivons pleinement.
Beaucoup suggèrent de lire Jean 14 le jour de la Pentecôte. Jésus y affirme : «Même si je pars, vous n’avez pas à vous troubler. Le Consolateur, l’Esprit, viendra et demeurera éternellement avec vous.» Pour les croyants, il n’y a pas de plus grande consolation. Au temps de Jésus, les disciples avaient sous leurs yeux le Ressuscité, mais les générations suivantes ne bénéficieraient pas de sa présence physique. Or, grâce à la venue du Saint-Esprit, tous ceux qui croient en Jésus, où qu’ils se trouvent et en tout temps, peuvent faire la même expérience de sa grâce. Le Saint-Esprit accomplit la promesse de Jésus : Il est «un autre Consolateur», signe que Dieu inaugure pour nous une «ère nouvelle».
Le mot grec paraklêtos, habituellement traduit par «Consolateur» (ou «Avocat», «Défenseur», «Conseiller»), recouvre une large palette de significations : «celui qui aide et se tient à vos côtés», «celui qui soutient», «celui qui encourage». En anglais, on utilise souvent Comforter, Advocate, Counselor. Le pasteur David Jang remarque que comfort (en latin com + fortis) signifie «donner de la force», insistant sur le fait que le Saint-Esprit ne fait pas que nous réconforter : Il nous accorde aussi courage et puissance spirituels. La hardiesse de témoigner de l’Évangile vient du Saint-Esprit. Les disciples, réunis pour prier dans la chambre haute après la résurrection, ont reçu l’Esprit et, dès lors, ont proclamé la Bonne Nouvelle sans craindre la mort. C’est cette puissance, même dans les persécutions les plus violentes, qui a permis l’expansion de l’Évangile.
Le Saint-Esprit nous rappelle toutes les paroles de vérité prononcées par Jésus, nous les enseigne et nous conduit à marcher par la foi sur ses traces.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que «cette habitation intérieure de l’Esprit nous permet de rencontrer le Seigneur en tout lieu et en tout temps, franchissant les limites du temps et de l’espace». Quand nous devenons le temple du Saint-Esprit, notre foi ne se limite plus à un savoir ou à un cadre institutionnel. Nous cherchons la direction du Saint-Esprit dans chacun de nos actes, nous fuyons le péché et persévérons dans la vérité. Cela change la motivation profonde de notre cœur : nous ne sommes plus dominés de l’extérieur par la loi ou par des contraintes religieuses, mais nous sommes transformés de l’intérieur, libres et animés par l’Esprit.
Ainsi, Jean 14 concentre en lui-même la profondeur de la Trinité. Le Père a conçu le plan du salut, le Fils l’a accompli, et le Saint-Esprit l’applique concrètement à chaque croyant, faisant porter du fruit. Sans cette perspective trinitaire, on pourrait considérer l’Église comme une simple organisation religieuse inventée par les hommes. Mais, en comprenant l’économie trinitaire, nous saisissons que l’Église est «la communauté où réside le Saint-Esprit». Chacun de nous peut devenir un «temple de l’Esprit», goûtant déjà, sur cette terre, la gloire céleste et vivant dans l’espérance.
Le pasteur David Jang déclare : «Le Saint-Esprit est celui qui bâtit l’Église, tout en veillant et en transformant nos âmes.» Quand Il vient en nous, nous pouvons tenir fermes jusqu’à la fin, en nous attachant à l’alliance de Jésus-Christ. Même si nous tombons ou péchons, l’Esprit nous habite, nous rappelant à la repentance et à la sainteté. Selon la vision évangélique, le Saint-Esprit peut aussi guérir et consoler, dissipant les conflits et les blessures de notre époque. Il adoucit les cœurs endurcis par la haine, amenant réconciliation et amour, et libère les opprimés par le péché pour leur offrir la joie.
Le fait que Jésus, après son départ, nous envoie le Consolateur qui demeure en nous pour toujours est d’une immense consolation. Où que l’on vive, à quelque époque que l’on appartienne, quiconque confesse Jésus-Christ comme Seigneur et aime sa Parole reçoit le même don de l’Esprit. Ainsi s’exprime la «catholicité» (universalité) de l’Église dont parle souvent le pasteur David Jang. Cette universalité repose sur le fait que le Saint-Esprit est répandu sur toute chair. Dans l’Église, on ne peut établir de discrimination fondée sur le rang, l’âge, le sexe ou la position sociale. Le Saint-Esprit accorde à chacun divers dons pour former un seul corps, témoin du Christ. Ainsi, chacun peut contribuer, par ses charismes, à la vie de la communauté.
De plus, le Saint-Esprit, «Esprit de vérité», ne tolère pas le mensonge, l’obscurité, la haine ou la violence. Le monde est ébranlé par la quête du profit, du pouvoir et par le choc des désirs, mais dans la communauté animée par l’Esprit, on apprend à servir et à pardonner. Tel est l’horizon à poursuivre pour l’Église de Jésus-Christ. Bien que l’Église soit imparfaite, si elle demeure dans l’Esprit et avance peu à peu vers la vérité et l’amour, le monde apercevra, à travers elle, la lumière du Christ. Le pasteur David Jang présente ce processus comme «la voie de l’expansion du règne de Dieu.» L’Église, tout en étant sainte et distincte du monde, demeure au cœur de celui-ci pour le servir, guidée par l’Esprit, franchissant toutes les barrières linguistiques et culturelles pour annoncer l’Évangile.
Ainsi, le pasteur David Jang insiste sur la promesse d’une nouvelle ère du Saint-Esprit, ancrée dans le chapitre 14 de l’Évangile de Jean qui dévoile la vision trinitaire du salut et la venue du Consolateur. Nous croyons en un Dieu unique en trois Personnes. Même si des forces tentent de saper la doctrine chrétienne, la foi trinitaire, fondée sur la Parole, reste inébranlable. Par ailleurs, ceux qui expérimentent la Trinité de manière concrète sont capables d’aller de l’avant avec hardiesse dans le monde, portés par la puissance brûlante du Saint-Esprit.
On ne devient enfant de Dieu que par le sacrifice de Jésus-Christ sur la croix ; quiconque reconnaît cela et accueille le Seigneur reçoit le Saint-Esprit, qui aide à briser le joug du péché. Le cœur repentant et régénéré revêt un habit nouveau dans l’Esprit, se conformant de plus en plus à l’image de Jésus. Cela se traduit, au sein de la communauté ecclésiale, par une pratique de l’amour et du service mutuel, et se diffuse dans le monde comme un parfum de Christ. C’est la puissance de l’Évangile, rendue possible par l’action du Consolateur, le Saint-Esprit. Depuis Jean 14, l’Église a pu traverser persécutions et crises au fil des siècles – Moyen Âge, époque moderne et contemporaine –, parce que le Saint-Esprit n’a jamais abandonné ceux qui croient. Le pasteur David Jang affirme que l’action du Saint-Esprit demeure actuelle et nous invite avec conviction à «louer le Dieu trinitaire.»
II. La vie dans l’ère du Saint-Esprit et l’accomplissement du salut
S’appuyant sur la foi trinitaire, le pasteur David Jang enseigne comment doit vivre le croyant de l’ère du Saint-Esprit. Recevoir l’Esprit, c’est vivre de manière «présente» le salut en Jésus-Christ, bénéficier de la liberté du pardon du péché tout en avançant dans la sanctification rendue possible par la puissance divine. Le salut n’est pas un événement ponctuel relégué au passé, il embrasse le présent et le futur dans un processus qui culminera un jour. Au moment où l’on croit en Jésus, on est «déclaré juste», mais, en même temps, on entame le chemin de la sanctification, dans lequel on abandonne peu à peu ses anciennes habitudes pécheresses. Cette sanctification n’est pas le fruit de nos seuls efforts ou de notre volonté propre ; elle est intimement liée à l’aide et à la direction du Saint-Esprit.
Le pasteur David Jang qualifie souvent Romains 8 de «chapitre du Saint-Esprit». De Romains 1 à 7, l’apôtre Paul dresse le constat du péché humain, explique comment la croix de Jésus rachète ce péché, et quiconque met sa foi en Lui est justifié. Au chapitre 8, il expose la doctrine du Saint-Esprit, annonçant la liberté accordée au croyant dans l’Esprit. Paul déclare : «Il n’y a donc maintenant aucune condamnation pour ceux qui sont en Jésus-Christ» (Rm 8,1) et «la loi de l’Esprit de vie en Jésus-Christ m’a affranchi de la loi du péché et de la mort» (Rm 8,2). Ainsi, animés par l’Esprit, nous ne sommes plus des condamnés, mais des enfants de Dieu, pouvant nous approcher de Lui avec assurance.
Lorsque le Saint-Esprit agit, notre salut ne reste pas au stade de la simple profession de foi intellectuelle, mais se manifeste concrètement dans notre vie. Galates 5 décrit le fruit de l’Esprit : l’amour, la joie, la paix, la patience, la bonté, la bienveillance, la foi, la douceur, la maîtrise de soi. Si quelqu’un se dit sauvé, mais que sa vie n’en porte aucun signe, cela laisse entendre qu’il n’a pas accueilli pleinement l’action de l’Esprit. Or, l’Esprit laboure notre cœur, chasse le mensonge, l’avidité, la convoitise, la haine, afin que nous ressemblions de plus en plus à Jésus. C’est pourquoi, que ce soit au moment de la Pentecôte ou dans chaque culte, le pasteur David Jang exhorte à «aspirer à la plénitude du Saint-Esprit». Même la meilleure prédication ou la plus solide formation biblique ne peuvent opérer un changement intérieur si nous ne désirons pas ardemment être remplis de l’Esprit.
Le pasteur David Jang qualifie le livre des Actes des Apôtres de «livre des actes du Saint-Esprit». Malgré le titre «Actes des Apôtres», la lecture montre que le fil conducteur n’est pas la compétence de Pierre ou de Paul, mais plutôt la direction du Saint-Esprit, qui les guide vers divers lieux, vers différents peuples, répandant l’Évangile. Après la Pentecôte, Pierre prêche avec hardiesse et trois mille personnes se convertissent en un jour. Puis l’Évangile sort de Jérusalem pour gagner la Judée, la Samarie, et finalement les confins de la terre. Cet extraordinaire mouvement ne procède pas de la force humaine. Les disciples, qui avaient fui par crainte lors de l’arrestation de Jésus, prennent soudain courage pour proclamer la Bonne Nouvelle, même au péril de leur vie. Cette puissance, qui a permis à l’Évangile de se déployer malgré les persécutions, est manifestement l’œuvre du Saint-Esprit.
La force du Saint-Esprit, c’est la transformation de la personne, l’édification de l’Église, la «secousse» qui ébranle le monde pour y instaurer le règne de Dieu. L’Église est la communauté appelée à participer à cette œuvre de l’Esprit, et la vie du chrétien consiste à marcher avec Lui. Inévitablement, persécutions et épreuves surgissent. Dans les chapitres 15 et 16 de l’Évangile de Jean, Jésus prévient : le monde vous haïra. Pourquoi ? Parce que le monde préfère les ténèbres à la lumière (cf. Jn 3,19). Au lieu de reconnaître humblement leurs péchés, beaucoup les cachent et se justifient. Mais le croyant, animé par l’Esprit, confesse ses fautes, observe la Parole de Dieu et poursuit la voie du Christ.
L’ère du Saint-Esprit n’est pas une époque où nous serions «laissés orphelins», mais celle où le Consolateur nous soutient, nous défend, nous enseigne. Le pasteur David Jang le décrit sous plusieurs facettes : en tant que «Consolateur», Il guérit nos cœurs brisés ; en tant qu’«Avocat», Il nous défend quand Satan nous accuse de nos fautes, nous rappelant que nous sommes justifiés par la Croix du Christ ; en tant qu’«Aide», Il nous donne la force et la sagesse pour une vie nouvelle ; en tant que «Conseiller», Il nous éclaire quand nous sommes perdus, ranimant en nous les Paroles de Jésus. Surtout, ces œuvres se produisent «en nous», parce que le Saint-Esprit habite au plus intime de notre être.
Le pasteur David Jang enseigne également qu’après la Pentecôte, hommes et femmes, esclaves ou libres, tous peuvent recevoir le Saint-Esprit. Dans l’Ancien Testament, l’Esprit reposait essentiellement sur des prophètes ou des rois, mais aujourd’hui, la prophétie de Joël – «Je répandrai mon Esprit sur toute chair» (Jl 2,28-29) – s’est accomplie. Dans Actes 2, Pierre cite Joël pour expliquer ce qui se passe à la Pentecôte, ce déversement de l’Esprit. Ainsi, les murs sociaux et culturels tombent, et l’Église devient une communauté rassemblant toutes sortes de personnes. De nos jours encore, elle se compose de personnes de diverses origines et de toutes conditions, mais qui louent Dieu d’une même voix et se servent les uns les autres. Parce que le Saint-Esprit crée l’unité.
Le Saint-Esprit dispense à chacun divers dons (charismes). Certains reçoivent la parole de sagesse, d’autres la parole de connaissance, d’autres encore la foi, la guérison, la prophétie, le discernement des esprits, le parler en langues ou l’interprétation (1 Co 12). L’essentiel est de se souvenir que «tous ces dons proviennent d’un même Esprit». Leur but est l’édification de l’Église, le service du prochain et la gloire de Dieu. Le pasteur David Jang insiste : aucun charisme n’est supérieur à un autre. Dans certaines Églises, on prétend que ceux qui ne parlent pas en langues ne sont pas sauvés. C’est un enseignement extrême en désaccord avec l’équilibre biblique. Que ce soit le parler en langues ou la prophétie, c’est le Saint-Esprit qui «distribue ses dons à chacun comme il veut» (1 Co 12,11). Nous devons désirer les dons avec ferveur, mais sans en tirer orgueil ni mépriser les autres ; au contraire, nous devons nous servir mutuellement avec amour.
En plus d’édifier l’Église, le Saint-Esprit fait grandir en sainteté la vie de chacun. Chaque péché nous salit comme un vêtement souillé, d’où la nécessité de la repentance et de la purification. Il est difficile de se défaire d’habitudes pécheresses ancrées. L’apôtre Paul, dans Romains 7, confesse : «Car je ne fais pas le bien que je veux, et je fais le mal que je ne veux pas» (Rm 7,19). Mais, au chapitre 8, il déclare : «Il n’y a donc maintenant aucune condamnation pour ceux qui sont en Jésus-Christ» (Rm 8,1) et «la loi de l’Esprit de vie… t’a libéré de la loi du péché et de la mort» (Rm 8,2). Par là, nous voyons qu’il est possible d’être victorieux dans l’Esprit. Même les formes d’addiction les plus graves peuvent être brisées par la puissance du Saint-Esprit. Le pasteur David Jang considère l’Esprit comme «l’Esprit de la liberté et de la délivrance intérieures». L’homme ne peut souvent s’arracher à l’emprise du péché par sa seule volonté. L’Esprit, cependant, a le pouvoir de rompre ces chaînes, nous faisant naître à une vie nouvelle.
Une autre œuvre décisive du Saint-Esprit est de «nous pousser sans cesse à la prière». Paul écrit en Romains 8,26-27 : «Nous ne savons pas ce qu’il convient de demander dans nos prières ; mais l’Esprit lui-même intercède pour nous par des soupirs inexprimables.» Beaucoup de croyants peinent à prier longtemps, car l’esprit se distrait ou se fatigue. Le parler en langues, lorsqu’il est reçu, nous permet de prier au-delà de la raison discursive et de persévérer dans la prière. Le parler en langues édifie celui qui l’exerce, tandis que la prophétie édifie l’ensemble de la communauté (1 Co 14). Ne pas parler en langues ne signifie pas qu’on n’est pas sauvé, mais si Dieu nous l’accorde, il est bon de désirer tous les dons, quelles qu’en soient les formes. Telle est la recommandation du pasteur David Jang.
Ainsi, le Saint-Esprit produit en l’Église une multitude de charismes et de fruits. L’histoire de l’Église montre que chaque période de grand réveil spirituel a été marquée par la puissance de l’Esprit : la Pentecôte du livre des Actes, la croissance fulgurante de l’Église primitive, la Réforme à la fin du Moyen Âge, les grands réveils à l’époque moderne, et l’expansion missionnaire mondiale à l’époque contemporaine. Quand l’Église se vide de la flamme de l’Esprit, elle tombe dans le formalisme religieux et cesse d’être sel et lumière pour le monde. Le pasteur David Jang nous met en garde : l’Église doit constamment se renouveler dans l’Esprit. «Une Église privée d’Esprit se contente de répéter des rites mécaniques, sans montrer un visage différent du monde.» À l’inverse, une Église remplie de l’Esprit rayonne la vie de Dieu, attirant les cœurs vers une véritable transformation.
La foi trinitaire indique que le Père a envoyé le Fils, Jésus-Christ, qui a obéi jusqu’à la mort pour parachever notre rédemption, tandis que le Saint-Esprit continue de la déployer en chaque personne et dans la communauté, jusqu’à ce que le Fils revienne. L’accomplissement final du salut aura lieu lors du retour du Christ. D’ici là, l’Esprit nous conduit chaque jour, nous sanctifie et nous fortifie. Selon le pasteur David Jang, «Le Saint-Esprit a pour objectif de former des disciples qui ressemblent à Jésus, tout en parant l’Église comme une épouse en vue de son retour.» Aussi la dimension personnelle de la piété et la vie communautaire vont de pair. L’Esprit Saint promeut la sanctification individuelle, mais aussi l’édification mutuelle. Quand nous confessons nos fautes, prions les uns pour les autres, et soutenons les plus faibles, la sainteté grandit solidement.
La Bible annonce qu’aux cieux nouveaux et à la terre nouvelle, le peuple de Dieu louera le Seigneur éternellement (Ap 21). Jusqu’à ce jour, l’Esprit ne cesse de veiller sur les croyants de chaque époque. Le pasteur David Jang précise : «Jusqu’au jour du jugement, le Saint-Esprit plaidera en notre faveur.» Grâce au sang de Jésus, nous sommes inscrits dans le livre de vie, et l’Esprit confirme cette certitude dans nos consciences, nous assurant d’être libérés de toute condamnation. Malgré l’agitation du monde, malgré les conflits qui déchirent parfois l’Église, tant que l’Esprit ne se retire pas, l’Église véritable du Christ ne saurait disparaître. C’est l’Esprit qui, dans son amour, nous interpelle à la repentance et suscite en nous une dynamique de renouveau.
Vivre en l’ère du Saint-Esprit, c’est participer jour après jour à l’économie du Dieu trinitaire. Par l’amour du Père, la grâce du Fils et la communion de l’Esprit, nous sommes devenus enfants de Dieu. Justifiés par la croix de Jésus, nous cheminons dans la sainteté grâce au Saint-Esprit. Bien que nous ne soyons pas parfaits, à mesure que nous implorons son aide et avançons pas à pas, l’«homme ancien» régresse et l’image de Jésus transparaît en nous. Le pasteur David Jang parle à ce sujet du «déploiement du royaume de Dieu en nous, dans l’Église et dans le monde». Plus l’Église vit une sainteté distincte de celle du monde, plus celui-ci, confronté à la vérité, aura l’occasion de s’ouvrir à l’Évangile.
Le chapitre 14 de Jean, qui annonce la venue du Consolateur et la vision trinitaire du salut, est le cœur de la foi chrétienne. Depuis l’Église primitive jusqu’à aujourd’hui, c’est cette promesse et cet Esprit qui ont permis à l’Église de subsister. Le pasteur David Jang exhorte alors : «Préservons cet héritage de foi et devenons une Église qui expérimente toujours plus la présence du Saint-Esprit.» Sur le plan individuel, cela implique de désirer chaque jour l’Esprit qui habite en nous, de méditer la Parole, de prier, et de combattre le péché pour mieux connaître Jésus. Au niveau communautaire, il s’agit de conjuguer les différents dons distribués par l’Esprit pour former un seul corps, pallier les faiblesses des uns et des autres, et rayonner la bienveillance du Christ dans le monde.
Au cœur de cette mission se trouve «l’amour de Dieu manifesté en Jésus-Christ», et «le Saint-Esprit qui grave en nous cette Parole et nous fait porter du fruit». Derrière tout cela, on discerne la main du Père et Son dessein éternel. Dans l’économie trinitaire, jamais nous ne sommes abandonnés ni désorientés. Le Consolateur, le Saint-Esprit, nous guide, nous affermit, nous appelle à la repentance et nous pousse à la prière. Celui qui saisit et accueille cette vérité n’a plus rien à craindre, pas même la persécution ou la mort. Car après la mort, nous attend la résurrection, et la victoire de Jésus devient notre victoire. Fort de cette espérance, le croyant se renouvelle chaque jour dans l’Esprit, portant avec abondance les fruits de l’amour, de la joie et de la paix.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que la promesse du Saint-Esprit, apparue dès Jean 14, se développe dans Joël 2, Actes 2, Romains 8, Galates 5, 1 Corinthiens 12-14 et d’autres passages du Nouveau Testament, formant la force essentielle de l’Église primitive. Le même Saint-Esprit demeure à l’œuvre aujourd’hui. Il nous suffit d’en saisir la réalité par la foi. Ainsi, l’Église se révèle comme une communauté de vie, non une institution purement religieuse ; elle se tient sous l’amour et la puissance du Dieu trinitaire, guidée par l’Esprit.
Nous vivons à présent l’ère du Saint-Esprit, expérimentant la promesse du Consolateur, adorant le Dieu trinitaire en communion avec Lui. Depuis l’ascension de Jésus, nous ne sommes pas livrés à nous-mêmes ; l’Esprit Saint continue de nous enseigner toute la vérité, nous faisant entrer dans la volonté du Père par l’œuvre rédemptrice de Jésus. À notre époque de grâce, tous ceux qui invoquent le nom de Jésus peuvent recevoir le Saint-Esprit, partager la variété de ses dons, témoigner de Lui au monde, et incarner l’amour et la vérité. C’est là le cœur du message que le pasteur David Jang ne cesse d’annoncer : «L’ère du Saint-Esprit est arrivée.» Nous adorons le Dieu unique en trois Personnes – le Père, le Fils et le Saint-Esprit – et demeurerons éternellement en Lui.
张大卫牧师将《使徒行传》称为“圣灵的行动录”。书名虽是“使徒行传(Acts of the Apostles)”,但仔细阅读便知,更关键的是圣灵如何带领使徒前往各处,又如何在各城市、各民族中拓展福音。五旬节圣灵降临后,使徒彼得放胆讲道,一日之内就有三千人悔改信主。福音也不再局限于耶路撒冷,向犹太全地、撒玛利亚直到地极迅速拓展,整个世界在福音大能面前开始经历巨变。这般惊人的复兴,并非源于使徒们原本拥有的力量。他们在耶稣被捕时,因惧怕而四散;但圣灵降临后,他们竟不惧死地勇敢传福音。
張ダビデ牧師は使徒の働きを「聖霊の行伝」と呼ぶ。その題名は「使徒の働き(Acts of the Apostles)」だが、実際に読んでみれば、使徒たち個々の力量というよりも、聖霊が彼らをどう導かれ、各都市や民族でどのように福音を広げられたかが核心的な流れとして描かれている。五旬節(ペンテコステ)の聖霊降臨の後、ペテロが大胆に説教した際、一日で三千人が悔い改めてイエス様を受け入れた。さらにはエルサレムにとどまることなく、ユダヤ、サマリヤ、地の果てまで福音が広がり、全世界が福音の力の前に変えられ始める。このような驚くべき出来事は、もともと弟子たちが持っていた能力によるものではなかった。彼らはイエス様が捕らえられたとき、恐れて逃げ散った弱い者たちだったのである。しかし聖霊が臨んだとき、彼らは死さえ恐れず大胆に福音を伝えるようにな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