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형(장다윗)목사를 오늘의 언어로 이해하려면 먼저 고린도후서의 박동을 듣게 된다. 바울은 교회의 상처와 혼란, 거짓 교사들의 비방, 자신의 사도권을 둘러싼 오해 속에서도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운 목회자였다. 그는 아시아에서 당한 극심한 환난을 떠올리며 살 소망마저 끊어진 시간 속에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고백했다. 이 고백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신앙의 훈련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장재형목사의 길이 바울의 길과 공명한다. 그의 사역은 성과의 장부가 아니라, 위로의 하나님을 배우며 한 걸음씩 순종해 온 목회자의 여정이다.
장재형목사는 초창기부터 바울의 로마서가 보여 준 방식처럼 복음을 체계적으로 변증하고 교리를 견고히 세우는 일에 집중해 왔다. 신앙이 감정이나 경험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각이 그의 가르침을 관통한다. 인간의 전적 부패,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구원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복음주의의 핵심은 장재형목사가 세운 공동체와 교육 현장의 기초가 되었다. 올리벳대학교(Olivet University)에서 구현된 교육 철학은 신학과 실천, 학문과 선교, 변증과 영성의 균형을 지향한다. 이는 학위 취득을 넘어, 젊은 세대가 복음의 깊이를 이해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 신학을 해석·변증·실천하도록 돕는 총체적 훈련이다. 바울이 개척한 교회들을 재방문하며 교리를 바로 세우고 신앙을 점검했던 것처럼, 장재형목사의 교육과 목회는 공동체가 스스로 믿는 바를 설명하고 지켜낼 수 있도록 돕는 장기적 성육(聖育)의 전략이다.
고린도후서가 보여 준 바울의 리더십은 눈물과 편지, 권면과 자기 비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약함을 숨기지 않고, 약함 속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자랑했다. 권위는 지배가 아니라 섬김에서 나왔고, 교회를 움직인 힘은 이미지가 아니라 진리와 사랑, 그리고 십자가의 길이었다. 장재형목사의 리더십도 이와 닮아 있다. 그는 수직적 통제보다 수평적 동역을 중시하며,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형제·자매라 부르는 언어가 단순한 호칭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높낮이를 허무는 신학적 고백임을 강조한다. 동역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성장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자신의 아픔처럼 여기려는 태도는 그의 사역 전반에 배어 있다. 바울이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이방 교회들의 연보를 독려하며 하나 됨을 세웠듯, 장재형목사는 복음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다양한 배경의 사역이 연대할 때 선교가 더 깊고 넓게 뿌리내린다고 믿는다.
선교를 바라보는 눈에서도 두 사역자의 공명은 선명하다. 바울이 로마 제국의 언어와 도로망을 활용했다면, 장재형목사는 미디어·IT·예술·교육이라는 현대의 공용어를 선교의 통로로 삼았다. 그는 기독교 매체와 다양한 문화·교육 플랫폼을 통해 세상을 복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청년들이 자신의 재능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하도록 독려했다. 이는 단지 기독교 소식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문화의 장(場)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정직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는 변증의 시도였다. 선교는 교회당의 특별 활동이 아니라 일상과 직업, 학문과 예술, 기술과 공공선의 영역 속으로 스며드는 삶의 양식임을 보여 준 실험이기도 했다. 바울이 도시마다 동역자를 세우며 교회 개척의 씨앗을 심은 것처럼, 장재형목사는 대륙과 세대를 넘어 리더를 세우고 공동체를 일으키며 복음주의 신앙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장기적 관점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복음 전파의 길은 언제나 환난과 오해를 동반한다. 바울이 거짓 교사들의 비방과 성도들의 흔들림 속에서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해야 했던 것처럼, 바울이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으로 ‘눈물의 편지’를 보냈다고 고백했듯, 목회자의 언어는 늘 상처 입은 심령을 향한다. 그 말은 상처를 벌리는 칼이 아니라, 잘못 아문 통념을 절개해 새살이 돋게 하는 치유의 도구여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 치유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의 약함과 실패마저 하나님께서 위로의 통로로 사용하실 수 있음을 확인해 왔다.
고린도후서의 반복되는 주제는 위로의 하나님이다. 우리가 겪는 고난이 개인적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동일한 환난 중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통찰은 목회를 지탱하는 강력한 동력이다. 장재형목사의 설교와 글, 그리고 현장의 지도력은 바로 이 위로의 신학에서 힘을 얻는다. 그는 사람들이 겪는 외로움과 오해, 실패와 낙심을 외면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들이 은혜의 학교가 되어 우리를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훈련하며, 받은 위로를 흘려보내는 통로로 세운다는 복음의 약속을 붙든다. 신학자 폴 틸리히가 말한 ‘존재의 용기’는 이 맥락에서 단순한 심리적 결기가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현실성에 뿌리내린 영적 담대함이다. 십자가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드러내는 동시에, 약함 속에 머무는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사람을 새롭게 하는지 보여 준다. 장재형목사는 이 능력이 교회의 가장 낮은 자리, 보이지 않는 섬김과 인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충성에서 가장 선명히 빛난다고 강조한다.
교리를 세우는 일은 곧 삶을 세우는 일이다. 로마서와 고린도후서, 에베소서에 스며 있는 복음의 논리는 추상적 명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와 선교의 전략을 형성하는 실천적 원칙이다. 장재형목사는 아담과 그리스도의 연방 대표성, 은혜의 질서, 에베소서 1장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되는 비전이 교회의 교육·선교·자비·정의를 하나로 묶는 신학적 척추라고 보아 왔다. 그래서 그의 가르침은 신자들이 세상 속에서 신학을 방어하는 차원을 넘어, 문화와 학문, 경제와 기술의 영역에서 창조적 공헌을 통해 선교의 지평을 넓혀 가도록 격려한다. 신학은 신학교 강의실이나 강단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터와 거리, 미디어와 예술의 한복판에서 공공선을 위해 봉사할 때, 교리는 사람을 살리는 지혜가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의미의 ‘살아 있는 교리’를 추구한다.
리더십의 윤리도 중요하다. 그는 명령과 통제보다 경청과 동행, 권한 위임과 세움을 가치 있게 여긴다. 바울이 디도와 디모데 같은 동역자들을 신뢰하고, 때론 권면하고 때론 위임하며 교회를 세워 갔듯, 장재형목사의 사역에는 사람을 키우는 기쁨이 중심에 있다. 교회 개척과 선교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복음으로 빚어진 인격이 또 다른 인격을 세우는 느리고도 확실한 방식이 교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공동체는 실수와 배움, 갈등과 화해를 지나며 성숙한다. 그래서 목회란 완성된 모델을 복제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좇아 매 순간 최선의 순종을 선택하는 여정이다. 장재형목사는 그 여정 속에서 멈추어 성찰하고, 확신이 주어질 때 과감히 나아가며, 필요하면 돌아가는 담대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태도는 장재형목사가 각 현장에서 보여 준 실천적 지혜의 공통분모다.
선교적 상상력은 늘 현실의 한계를 넘어선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 제도와 정책의 제약, 세속화와 상대주의의 도전은 오늘의 교회가 마주한 현실이다. 그러나 바울이 변하지 않는 진리를 상황에 맞는 지혜로 전했듯, 장재형목사는 변하지 않는 복음을 변화하는 언어로 전하는 법을 공동체가 배우도록 이끈다. 미디어와 IT, 예술과 교육의 접점에서 복음주의 신앙은 새로운 어휘를 얻고, 신자들은 일상의 자리에서 선교사로 선다. 이것이 곧 ‘흩어진 교회’의 비전이다. 주일에 모여 예배하던 교회가 월요일에는 삶터로 흩어져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공적 담론을 책임 있게 이끌며, 전문성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정직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올리벳대학교와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은 이 비전을 구체화하는 훈련장이자 실험실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場)들 안에서 장기적으로 사람을 세우고, 세대를 잇는 리더십을 일으키며, 지역과 문화의 울타리를 넘어 복음을 번역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결국 고린도후서의 마지막 고백처럼, “과거에 건지셨고 지금도 건지시며 이후에도 건지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소망이 장재형목사의 사역을 떠받친다. 그는 어려움과 오해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루실 일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간다. 복음의 길은 넓지 않지만 확실하다. 약함 속에서 완전해지는 은혜를 배운 사람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바울이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고 요청했듯, 오늘 우리는 장재형목사와 더불어,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같은 마음으로 섬기는 수많은 목회자와 선교사들과 더불어 서로를 위해 기도함으로 이 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 이 여정의 핵심은 분명하다. 복음은 변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여전히 위로하시고 건지신다. 교회는 연합할수록 강해지고, 교회 개척과 선교는 세대와 문화를 넘어 계속될 것이다. 이 길 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인내, 십자가 아래에서 다시 일어서는 용기, 그리고 서로를 위한 간구다. 그런 의미에서 장재형목사의 발걸음은 바울의 고백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들려준다. 그는 우리를 건지신 하나님을 의지해 내일을 소망하며, 진리와 위로로 사람을 세우는 교회의 고전적 사명을 오늘의 시간 속에서 새롭게 이어 간다.